‘독방’의 인간, 묵직한 터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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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27면

여성연극의 메카로 잘 알려진 산울림 소극장이 시선을 넓혀 해외 문제작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 번째 작품은 일본의 작가 겸 연출가 사카테 요지의 ‘블라인드 터치’다. 중견 연출가 김광보씨가 관록의 배우 윤소정·이남희씨를 내세워 국내 초연한다.
2002년 일본에서 초연된 ‘블라인드 터치’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970년대 일본 오키나와 반환협정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교도소에서 28년간을 살고 출옥한 남자와 그의 구명운동을 벌이다 옥중결혼한 16살 연상의 여자가 주인공이다.

연극 ‘블라인드 터치’

여기까지가 사실이라면, 진짜 이야기는 출옥 이후부터다. 투옥 전 ‘블라인드 터치’라는 피아노밴드에서 활동했던 남자를 위해, 여자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마련하지만 남자는 연주를 거부한 채 마당에 헛간을 만든다. ‘헛간’은 독방 속에서 감시당했던 28년의 극복인 동시에, 소영웅화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을 이어주는 ‘피아노’는 만남이자 실존의 부딪힘을 은유한다.

사회성 있는 묵직한 작품에 감각적인 무대연출을 펼쳐 보여온 김광보 연출가는 사카테 요지의 작품을 읽고 “자괴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일본 내 지뢰 문제를 다룬 ‘오뚝이가 자빠졌다’부터 일본의 근친혼 문화를 고발한 ‘사촌동지’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폭넓은 통찰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오는 일본 연극이 소소한 일상극 일색이라 무게 있는 사회극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이번 공연에 강한 의미를 부여한다.

국내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카테 요지가 내한, 2월 20일(수)과 22일(금) 저녁 공연이 끝난 뒤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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