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읽은 책 권수 늘어나면서 잘난 사람 앞에서 ‘기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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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근 기자]

“책의 용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책을 읽으면 세상이 덜 무서워지고, 분노와 고민이 줄어들고, 감정이 조절되지요. 또 불면을 줄어주고 치매를 예방하는 등 신체 건강에도 유익한 점이 많아요. 그 뿐인가요. 베개나 방석, 냄비받침 대신 쓸 수도 있고 실내 장식용으로도 좋습니다.”

독서기 『홍사장의 책읽기』(굿인포메이션)를 펴낸 홍재화(46·사진·드미트리 대표)씨의 책 예찬에는 엉뚱한 구석도 많았다. 양복 차림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온 모습부터 남달랐다. 외출 때마다 책 한 두권은 꼭 챙기는 그이기에 큰 가방이 필수란 것이다. “물론 두껍고 무거운 책은 집에서 보고 외출용으로는 얇고 가벼운 책을 갖고 다니려고 하지요. 하지만 읽던 책을 손에서 놓고 다른 책을 가져가는 게 잘 되지 않네요.”

그는 양말제조업체 사장이다. 1995년 직장을 그만둔 뒤 자동차 부품 수출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곧 주 품목을 발가락 양말로 바꿨다. “국내에서는 ‘무좀양말’로 통하는 발가락 양말이 서구에서는 ‘패션양말’로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핀란드·독일·미국·캐나다의 사업 파트너들과 공동 브랜드 ‘필맥스(FEELMAX)’를 만들었으며, 자신의 사업 노하우를 담아 2006년엔 『무역&오퍼상 무작정 따라하기』(길벗)를 펴내기도 했다.

사업을 하면서 그는 독서의 효용을 더욱 뼈져리게 느꼈다. 경영자는 언제나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책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에요. 도리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이 문제들이 제기되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으면 경영 결정을 해야 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질문과 해결책의 조합의 수가 늘어나는 겁니다.”

마음 다스리기에도 책은 고마운 도구였다. 읽은 책의 권수가 늘어나면서 잘난 사람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게 됐다. “열등감을 벗어나기 위한 그럴듯한 핑계를 잘 만들게 됐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일례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그는 이런 ‘핑계’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나의 유전자는 그동안 나와 비교했던 누구의 유전자보다도 더 많이 퍼질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나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개체(자식들)는 3개지만, 대부분은 2개에 불과하거나 심지어는 1개뿐일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윈에 의하면 나의 유전자는 현 세상에 어떤 유전자보다도 가장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독서량은 월 10권 정도. 2003년 10월부터 기록하고 있는 도서목록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4년여 동안 543권의 책을 읽었다. 그는 중요한 구절에 줄을 치고 책 중간중간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는다. 또 책 앞뒤 빈 공간에는 짤막한 독서감상문을 기록하고 있다. “낙서를 통해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만난다”는 그는 “읽은 책을 바라만봐도 내 자신이 이렇게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며 뿌듯해했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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