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엄마를 죽이고 싶어요"

중앙일보

입력

클리닉 비의 김정수 원장과 식사를 한지 1주일이나 됐군요.

몇 년 전 비만 전문치료기관을 표방하고 개원을 했을 당시 몇 가지 아이템을 소개한다고 해서 뵌 적이 있었지요. 기자 입장에서 보면 아이디어도 많고, 글도 잘 쓰시는 분입니다. 당시 건강 면에 ‘야간식사 증후군’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배가 출출해져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여닫는 비만한 사람들에게 매우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김 원장의 글이 나간 뒤 다른 매체에서 이런 주제의 기사나 칼럼이 여기저기 등장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몇 년 동안 뜸했던 그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장소는 코엑스였지요. 7월 9일, 제가 ‘닥터 클릭’이라는 회사에서 주최한 의료경영심포지엄에 강의를 하러 나갔었는데 김 원장께서 강의를 들으러 오셨더군요.

요즘 근황을 여쭤봤더니 업종(?)을 바꾸셨더군요. 비만에서 학습장애 쪽으로 말입니다. 정신과의사인 그는 ‘잠시 외도(?)를 했다가 본업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한번 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고, 바로 지난주 월요일 저녁 회사 근처 횟집에서 만났습니다. 시청 뒤 ‘신성’이라는 곳인데 강남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회를 큼지막하게 썰어주는 곳으로 유명하지요. 회를 곰삭은 김치에 싸먹는 시클벅쩍한 대중식당으로 나이 드신 대학교수 분들도 많이 찾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김 원장이 요즘 만나는 환자들은 학생입니다. 부모입장에서 보면 공부를 하지 않는 문제아지요.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와 탈출하려는 아이와의 갈등을 중재해 엇나가는 아이에게 정상궤도를 찾아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이런 사례를 듭디다. 어느 날 중학교를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병원을 방문을 했답니다. 방문한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공부하지 않고 반항하는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순종적인 아들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학생의 시험성적은 상위권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모범생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처음 진료실에서 마주앉은 아이와 김 원장과의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답니다. 그 학생의 경우 대화를 거부해 무려 40여분을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기 싸움’을 했답니다. 김 원장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나도 너를 도울 방법이 없다”라는 것이었답니다.

그렇게 아이에게서 대화를 끌어내는 데 무려 두 달이 걸렸답니다.
아이가 대화를 시작하면서 그가 들은 끔직한 말은 “엄마를 죽이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그 말을 들었으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한때는 어머니의 공부 강요를 더 이상 못하도록 일부러 전 과목을 빵점을 맞아 시험을 망치기도 했답니다.

아빠는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책도 많이 봐야 한다’는 융통성 없는 원칙론자인 듯 싶었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이셨는데 자식한테는 원칙만 제시할 뿐 각론에선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요즘 전형적인 아빠의 모습이었다고 해요.

부부의 사이는 별로 살갑지 않아보였고, 어머니는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한 부족한 애정을 아이에게 쏟아 붓는 그런 타입이었답니다. 예를 들자면 공부하는 아이 곁에 지우개를 들고 앉아 틀리면 지워주는 그런 집착형 사랑을 보이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 얘기를 들으니 제가 강의를 나갔던 M외고 학생들 생각이 났습니다. 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1000명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그곳 선생님 말씀이 아이들이 정신과 상담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을 한 공간에 가둬두고 공부를 강요하니 심리적 압박감에 못 견뎌하는 아이들이 많을 수밖에요.

아이들에겐 때론 혼자만의 공간도 필요한데 기숙사생활을 하니 자기만의 공간은 화장실 밖에 없다는 푸념도 했습니다. 게다가 일요일 아이들을 집에 보내면 부모들은 자녀를 반가워하기는커녕 공부를 시키지 않고 집에 보내는 학교의 처사를 비난한다고 합니다.

그날 강의를 하면서 노랗게 찌든 학생들을 보는 내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병들어 가는데 부모는 학생들을 학교에 가둬두고 부모의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겠지요. 이렇게 사회에 나간 아이들이 정말 국가의 동량이 될 것인가는 차후의 문제고요.

어쨌거나 김 원장과 대화의 창을 연 학생은 서서히 변해갔답니다. 부모가 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가 변할 수 있을까요. 이를 보며 ‘아이가 부모의 스승’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부모를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된 길을 교정해가는 아이들이 정말 대견했습니다.

지금 그 학생은 과거의 질곡에서 벗어나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수학 과목 점수가 다소 떨어진다고 스스로 진단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군요.
김 원장에게 오는 환자는 강원도 전라도 등 전국적이라고 해요. 1시간여 상담을 받기 위해 몇 시간씩 달려오는 대한민국 부모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의 얘기를 듣노라면 정말 나라 전체가 입시로 인한 우울증에 빠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고종관 기자

[조인스헬스케어(http://healthcare.joins.com) 헬스코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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