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로 시작 경제로 마감한 부시 국정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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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8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임기 중 마지막 국정연설을 하기 직전 상·하원 의원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에게 윙크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임기 중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미국 경제의 불황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며 “미 의회가 한국·콜롬비아·파나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비준해 달라”고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오후 9시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여덟 번째 국정연설에서 “현재 미국 경제가 불확실성의 시기를 맞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지난주 민주·공화 양당이 행정부와 합의한 15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신속히 입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한국 등 3개국과 FTA가 발효되면 미국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날로 커지는 이들 국가에 더 많은 미국 제품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알카에다가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 할 일이 남아 있다”며 조기 철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란의 핵개발 시도와 관련해선 “검증 가능하게 핵농축을 중단하면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탄압정치와 테러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임기 안에 북핵 문제의 진전을 이루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북한을 대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2003년에는 ‘억압 정권’과 ‘무법 정권’으로 지칭했다. 2004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의 하나’, 2005년에는 ‘핵 야망(nuclear ambition)을 가진 나라’, 2006년에는 짐바브웨·미얀마 등과 동렬의 비민주주의 국가라고 지목했었다. 그러나 2007년에는 북한을 직접 지칭하는 대신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위해 주변 국가들과 공조 중’이라고만 밝힌 데 이어 올해는 언급 자체를 회피한 것이다.

◇경제로 시작해 다시 경제로=부시 대통령은 2001년 2월 27일 취임 1개월 만에 가진 첫 국정연설에서는 의욕적인 감세안을 제시하며 국내 경제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해 9·11 테러가 터지면서 2002년 국정연설은 ‘전시연설’로 변했다. 부시는 “지금 미국은 전쟁 중”이라며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이듬해 국정연설은 2개월 뒤 이라크 침공을 예고한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부시는 “사담 후세인이 끝내 무장을 해제하지 않겠다면 미국은 그를 무장해제할 연합을 이끌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선이 있던 2004년 국정연설에서도 부시는 “(테러) 위험이 사라졌다고 믿어 버리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오판”이라며 긴장의 끈을 이어갔다.

재선에 성공한 2005년 국정연설에서 부시는 오랜만에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거론하며 국내 문제로 포커스를 돌렸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 악화로 2006년과 2007년 국정연설은 이라크전과 미군 증파의 당위성 변호로 다시 메워졌다. 이런 가운데 한때 80%에 달했던 부시의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고, 28일 마지막 국정연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동 등 그의 임기 말을 강타한 경제난 해소 방안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CNN 방송은 “전례 없이 유화적이고 포용적인 연설”이라면서도 “부시는 공화당 대선 후보들이 유세 참석을 거부할 만큼 인기가 추락해 있어 연설이 영향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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