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김의즐거운유학생활] 현지인이 발음 못 알아듣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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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 가운데 영어 때문에 남 몰래 눈물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이 전혀 준비 없이 유학을 온 건 아닙니다. 나름대로 어학원 같은 곳에서 적어도 1년 이상 영어를 공부했거나 특목고 입시를 대비하느라 열심히 듣기 공부를 해온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학생들은 현지인이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한국 사람끼리도 사투리를 쓰거나 발음이 낯설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외국인이 하는 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자신이 하는 영어를 듣고 현지인들이 항상 긍정적으로 반응하리라 기대하지 않는 게 속 편합니다. 내 발음을 못 알아듣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의외로 잘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외국 학생들의 발음을 잘 못 알아듣겠다고 면박을 주거나, 이해를 못하겠다고 퉁명을 부리는 미국인 학생들을 만나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좀 더 여유를 갖고 당당하게 생활하자는 말입니다.

흔히 자기 말을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발음이 나빠 그러는 거라고 자책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발음이 해결된다고 영어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사실 발음보다 생활 경험이 더 요구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학교에서 댄스 파티가 있을 때마다 자주 듣는 단어가 ‘Chaperon’입니다. 사전을 보면 ‘젊은 미혼 여성이 사교계에 나갈 때 시중 드는 보호자로, 보통 중년 여성을 일컬음’이라고 나옵니다. 그럼 미국 현지인들이 그런 의미로 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춤을 추면서 학생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동작이나 자세를 연출하면 주의를 주는 사람을 의미하니까요. 이런 경우에서 보듯 진짜 문제는 발음이 아닙니다. 미국에 살면서 댄스파티를 가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겁니다. 귀로는 분명이 무슨 단어인지 생생하게 다 들려도 그런 표현을 써본 경험이 없어 이해를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대체적으로 내 의견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알아듣느냐가 더 시급한 문제입니다. 현지에서 빨리 적응하려면, 유학생활을 실패하지 않으려면 겪어 보지 않은 새로운 문화에 담대하게 도전하세요. 내 앞에 펼쳐지는 낯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배워 나가자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 김 세종어학원 원장

◆미국 사립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해 온 세종어학원 존 김 원장이 미국 유학생활에 도움이 될 생생한 교육정보를 연재합니다. 존 김 원장은 『SAT Reasoning Test 수학 완성』 『미국 고교수학 완성』을 쓴 수학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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