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대표작 1003개 TV탑 ‘다다익선’ 수리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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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7일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 입구에서 좌중을 압도하던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多多益善·사진)’ 앞에는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1003개의 TV를 탑처럼 쌓아 올린 이 대작은 지난해 말부터 전원이 꺼진 채 수리를 받고 있다. 앞으로 TV 탑을 해체해 수리한 뒤 4월 말께 다시 관람객에게 돌아온다. 복잡하게 연결된 작품의 배선이 노후화돼 화재 위험까지 우려되자 미술관이 내린 조치다.

 지난해 1월 29일 백남준 1주기 때는 이 작품 앞에 백남준의 웃는 영정을 두고 미술계 인사들이 헌화하는 등 추모 행사가 열렸었다. 수리 공사를 총괄하는 미술관 지병원씨는 “20년 된 작품이라 노후화된 배선을 교체하고, 고장난 모니터를 교체할 필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당장은 기본적 배선 수리만 거치지만, 이를 계기로 브라운관 TV로 만들어진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앞으로 어떻게 수리·보존 될지에 대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다다익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높이 18.5m, 무게 16톤에 달하는 대형 작품이다. 브라운관 흑백 TV 모니터로 이뤄진 이 작품은 작가 동의를 거쳐 2003년 브라운관 컬러 TV 모니터로 교체됐다. TV 모니터는 필연적으로 낡고 고장날 수밖에 없다. 국내 대기업들은 내수용 브라운관 TV 생산라인을 중단하다시피 했다. 브라운관 TV는 예술품 보존에나 쓰일 골동품이 될 판이다.

 이 때문에 미술관은 빠르면 3년 뒤 모니터의 수명이 다하면 ▶LCD나 PDP로 작품 전체를 바꿀지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브라운관 모니터를 유지할지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1003개라는 의미 있는 숫자를 유지한 채 모니터가 평면으로 바뀐다면 작품 모습까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준 작품은 변신 중= 국내에서는 이미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에 설치된 작품이 작가 동의를 거쳐 LCD 모니터로 탈바꿈했다. 해외에서는 일본 도쿄도립미술관에서 작품을 LCD 모니터로 교체했다. 브라운관 TV도 작품이므로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백남준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는 “왜 안 되겠나, TV는 TV일 뿐”이라며 “백남준의 작품은 세상의 변화, 기술의 발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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