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타고 온 준재벌 딸도 있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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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나 참, 내가 가리늦게(뒤늦게) 이게 뭐 하는 기고… 식당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 있고, 그라이(그러니) 어디 가도 조심해야 되고….”

백발의 노신사는 기분 좋게 투정을 부렸다. 그는 벌써 몇 번 미디어를 접한 적이 있는지 기자가 집으로 들어가자 방에서 얼른 서류봉투를 꺼내왔다. 봉투 속에는 이명박 당선인과 관련된 기사를 복사한 종이와 자신이 직접 쓴 메모가 있었다.

이 노신사는 이명박 당선인의 동지상고 시절 영어선생님이자 이 당선인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와 결혼을 주선한 ‘중매쟁이’기도 한 정수영(72)씨다. 고등학교 시절 당선인은 어땠을까?

“명랑하고 밝았지만 온화했어… 설치거나 뭐 그러지는 않았어.”

“한마디로 교실에 들어서면 확 띈다는 거죠?”

“그렇지! 야간부는 주경야독이라는 말 그대로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잖아. 그라니까 대부분 표정이 어둡고 그래… 하기사 뭐 야간부는 수업하다가 보면 자주 불도 나가고 그래… 그러면 발전기 돌릴 때까지 애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그런데 이 사람(당선인)은 굉장히 밝고 명랑했어. 영어는 단연코 뛰어났고, 전 과목을 주야간 합쳐서 1등 했으니까. 3년 내내 장학금이지 뭐. 그래도 큰소리 치는 것도 없었고….”

정씨는 학생 이명박의 표정에서 그늘을 읽을 수 없어서 그의 가정형편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을 정도였다.

“사실 야간부에 다니면 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요. 그런데 표정이 밝고, 전혀 표가 안 나니까, 나는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줄 몰랐지. 개중에는 낮에 일 안 하고 공부하는 애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전혀 티를 안 내니까, 그런 게 자제심 아니겠나?”

그는 몇 번이나 ‘단연코’ ‘굉장히’라는 말을 써가며 당선인의 학생시절을 회고했다. 그에게 최근 화제가 되는 당선인의 영어실력에 대해 물었다.

“미남이 큰일 하는 건 드물잖아”

“영어 잘했죠. 다른 사람에 비해서…. 그래도 뭐 그때 영어 발음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 그 사람이 영어 잘하는 건 아마 그 뒤에 훨씬 더 공부해서 실력을 쌓았으니까 그렇겠지. 고등학교 때 실력이라고 보진 않아요.”

그러면서 예전에 이 당선자의 영어 실력을 알 수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아마 현대건설 사장 때일거야. 하루는 사장실에 갔는데 외국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더라고. 미국의 어느 주지사와 통화를 했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잘하더라고. 그때도 좀 놀랐지.”

정씨는 28~31세까지 딱 4년간 영어교사를 했다. 이명박 당선인이 동지상고를 졸업한 1년 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와서도 도드라진 제자 이명박에 대한 얘기는 쭉 듣고 있었다.

“고려대를 가서 총학생회장을 하더니 현대건설에 가서 또 초고속 승진을 하잖아…. 참 보통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때도 1년에 한두 번은 사제 간의 만남이 있었다. 당선인의 책 『신화는 없다』를 보면 주말도 없고, 집이 이사간지도 모를 정도로 바빴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꾸준했다. 이 당선인은 특히 경조사를 꼬박꼬박 챙겼다. 매년은 아니었지만 스승의 날에도 가끔 난(蘭)을 보냈다.

“이 사람이 그런 거 잘해요. 정도 많고 남을 배려하는 것도 꼼꼼해. 사람들이 몰라서 인정이 없다고 하지 그렇지 않아요. 물론 일에 들어가면 달라지겠죠. 철저하고 예외가 없겠지. 하지만 인간적으로 들어가면 영 달라요.”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정씨가 갑자기 흥분했다. 뭔가 욱 하는 게 있었나 보다.

“내가 이거는 꼭 말해야겠어요. 자꾸 그 사람 보고 거짓말한다고 하는데 내가 참 화가 나요. 내가 어디 가면 이 사람은 거짓말할 사람 아니라고 꼭 말해요. 어렵게 지냈지만 이 사람 어머니의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또 아무리 어렵지만 어려운 거하고 인격 형성하고는 다릅니다. 나는 마 거짓말 소리만 들으면 기분이 나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은 절대 그런 거 없어요. 내가 그래도 선생 아니었습니까. 그거는 보면 알아요.”

제자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다. 실제 정씨는 지난해 선거기간 중 지하철에서 당선인을 비난하던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언제부터 그런 확신이 생겼던 것일까? 정씨를 통해 당선인의 배필이 정해진 걸 보면 확신은 오래된 듯하다.

그의 친구였던 김재응(작고)에게 여동생이 있었고 이 당선인과 김재응의 여동생인 김윤옥 여사와의 만남이 그를 통해 시작됐다.

“나는 이 사람 자랑 막 하고, 그 친구는 지 동생 지가 자랑하기 좀 그러니까 중간에 또 다른 친구가 대신 자랑해 주더라고요.”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친구 간에 제자와 여동생 자랑을 서로 하다 배필을 지어준 셈이다.
“그때는 정말이지 참 남달랐어. 정말 기대가 되더라고. 그렇다고 이렇게 대통령까지 될 줄은 몰랐지만 그냥 현대건설 사장에서 그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신부를 좀 꼼꼼하게 봤지. 검사를 많이 한 거지.”(웃음)

▶(좌) 이명박(왼쪽)과 동지상고 시절 함께했던 친구들.
(우) 지난해 스승의 날 당선인이 보내온 난(蘭).

“사장으로 끝날 사람 아니었어”

그는 뭘 그렇게 꼼꼼하게 검사했을까?

“신부 집안이 참 깨끗해. 아버님이 고위 공무원이었고 어머님은 자애로웠지. 오빠인 내 친구도 성격이 좋았고….”

그러면 신부 쪽은 당선인을 어떻게 봤을까?

“이쪽(신부 쪽) 아버지 어머니 오빠는 좋아했어. 나를 믿으니까. 본인(김윤옥)은 모르지. 방송에 보니까 뭐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고 했다던데…. 그게 사실이겠지. 그러나 솔직한 말로 미남이 큰일 하는 건 드물잖아. 그 사람이 그동안 해 온 일을 보면 남다르니까 더 신중하고, 조심하면서 사람 골랐지….”

김 여사는 이화여대 메이퀸(May Queen)인 데다 집안도 좋고 더 좋은 혼처도 많았을 것 같다. 당선인은 선거 광고에서도 말했듯이 인물은 별로 아닌가?

“그건 아니에요. 에이 그건…. 미남형은 아니라도 보통은 되지.”

옆에 있던 그의 부인도 거들었다.

“이 양반은 중매하실 때 오히려 당선인이 밑지는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다시 정씨가 말을 받았다.

“이건 기사화하면 안 돼요. 그때 우리나라 준재벌이 있었다고. 이름만 들으면 다 알 수 있는…. 게다가 그집 딸이 참 미인이었어요. 맞선 장소에 벤츠를 타고 나왔으니까. 그때 우리는 지프 타고 나갔지. 현대건설 이사였을 때니까. 그런 일도 있었어요.”

거듭 기사화하지 말라고, 자신이 말 실수한 것 같다고 했지만 당선인의 책 『신화는 없다』에 이미 그는 젊은 시절 몇 가지 연애사(史)를 담담히 써놨다. 연애까지 가지도 않은 만남이니 큰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사실 김윤옥 여사도 검사한테 중매가 들어왔었다.

당시만 해도 현대건설 이사보다 검사가 흔히 말하는 좋은 혼처였다. 그래도 김 여사가 앞을 보는 눈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검사를 물리치고 당선인을 택했다.

“내가 그때 김 여사 오빠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장래가 굉장히 촉망된다. 이런 신랑감 구하기 어렵다. 단, 외관은 그렇게 미남은 아니지만 그냥 수수하고, 그러고 현대 사장 정도로 끝날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해 줬지. 그게 적중한 거지.”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소개시켜준 셈이 됐으니 정씨의 중매가 보통 중매는 아니다.

인터뷰를 끝내려는 찰나 정씨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주민등록번호를 묻고 있는 듯했다.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한다고 신원조회가 필요하다네요. 뭐 그렇게 까다롭나?”

정씨는 또다시 웃으면서 투덜거렸다.

“기자 양반, 이거 하나만 꼭 써 주이소. ‘우리 이 당선인은 꼭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될 거다.’ 선생님 말인데 맞겠지 뭐.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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