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고립된 순간의 표현’… 시인의 눈으로 본 호퍼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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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빈방의 빛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한길아트, 120쪽, 1만5000원

오렌지색 커튼이 젖혀진 커다란 창 앞에 여자가 혼자 앉아 있다. 주홍색 모자를 쓰고 붉은 드레스에 망토까지 잘 차려입은 여자의 시선은 창 밖을 향하고 있다. 환한 실내에 비해 밖은 얼마나 어두운가. 그 어둠 속에 맞은 편 건물 윤곽이 유령처럼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어쩐지 불안하다. 아니 불길해보인다. 여자는 누구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곧 떠날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녀가 이 곳에 계속 머물게 될 것 같은 분위기도 감돈다.

 미국의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그린 ‘호텔의 창’(1956년)이다. 호퍼의 그림은 이런 식이다. 흔한 일상의 한 장면을 사진처럼 혹은 연극무대의 한 장면처럼 멈춰세운 듯하다. 그의 그림에서는 빛 한 줄기도 암시적으로 보인다. 적막감을 자아내는 텅빈 공간은 빛과 어둠을 대비시키며 강력하고도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도시의 권태와 고독, 불안과 황폐함을 보았고, 그의 그림에 빠져들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의 창’ (1956년 작, 101.6X139.7).

 『빈방의 빛』은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추대되기도 했던 마크 스트랜드가 호퍼의 그림을 본 감상을 담았다. 호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이트호크스’(Nighthawks)를 비롯, ‘오전 7시’‘햇빛이 비치는 2층집’등 30점의 작품을 다뤘다. 호퍼의 그림에 길이나 철도, 통로나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간파하고,역시 그의 그림의 기하학적 구성이 보는 이들을 어떻게 미지의 공간으로 유도하는지 섬세하게 짚어낸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호퍼의 공간은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하지만 감상주의로 빠지지 않은 점에서 그의 균형잡힌 시각이 오히려 빛난다. 이 책을 통해 호퍼를 처음 접하게 된 독자들에게는 2005년에 나온 『에드워드 호퍼』(롤프 귄터 레너 지음, 정재곤 옮김, 마로니에 북스)를 한 권 더 권해주고 싶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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