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간부들의 잘못도 큰데 이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아 피고인들을 선처할 여지가 있다.”
2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524호 법정. 형사2단독 구회근 판사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을 무마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최기문 전 경찰청장 등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찰 고위직 간부들이 입건유예 처분된 것을 비판한 것이다.
구 판사는 이날 최 전 청장(한화그룹 고문)과 장희곤 전 남대문서장에게 징역 1년을, 강대원 전 남대문서 수사과장에게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구 판사는 “경찰 수사권이 돈과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에 충분해 엄중한 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 전 서장과 강 전 수사과장은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한화의 부정한 로비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자유롭게 주장과 입증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3월 8일 발생한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은 경찰 조직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사건 발생 나흘 뒤 한화그룹 고문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은 고교 후배인 장희곤 당시 남대문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무마를 부탁했다. 장 서장은 강대원 남대문서 수사과장에게 한화그룹 현장에 나가 있는 수사팀을 철수시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김승연 회장 사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자체 수사에 착수했다. 최 전 청장은 다시 홍영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사를 중단시키거나 이미 청탁을 해놓은 남대문서로 이첩시킬 것을 부탁했다. 홍 청장은 광역수사대를 지휘하는 김학배 수사부장과 한기민 형사과장에게 이를 지시했고, 사건은 광역수사대 형사들의 반발 속에 남대문서로 넘어갔다.
이후 최 전 청장과 장 전 서장, 강 전 수사과장은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홍 전 청장과 김 전 수사부장, 한 전 수사과장은 검찰에서 입건유예 처분을 받았다.
박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