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학원, 학습량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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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하면 성적이 올라야 마땅하다. 고교 때 배운 것을 한 번 더 배우고 익히니 응당 그래야 옳다. 하지만 세상사 뜻대로 되는가. 재수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적이 크게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1년 전과 비슷하거나 약간 오르는 데 그치는 이들이 많다. 되레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왜 그럴까. 이런 저런 이유로 공부하는 시간이 고교 때보다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재수생들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심리적인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끊임없이 고개 드는 열등의식과 자격지심도 극복해야 한다. 술집·당구장·PC방·노래방 등 각종 유혹에도 노출된다.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장·PC방을 들락거리게 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술집도 가게 된다. 이성교제도 고교 때보다 자유롭다.

기숙학원을 선호하는 학부모·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일반종합학원에 등록하고 집에서 다닐 경우 학원 가는데 1시간, 집에 오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린다. 청솔기숙학원 김현종 부원장은 “그 두 시간 동안 매일 자신이 부족한 과목 공부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리 어려운 과목이라도 공략 가능하다”고 말했다.

용인대성학원 양완영 부원장은 “1년간 일반 종합학원에서 재수를 할 경우 통학·PC방·영화관·주말·공휴일 등으로 허비되는 시간은 1460여 시간이라는 통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루 24시간 꼬박 공부한다고 치더라도 2개월이 넘는 시간을 기숙학원에서 공부할 때보다 허비한다는 얘기다.

또 다른 통계도 있다. 일반 학원의 경우 오가는 통학 시간, 친구 교제, 인터넷 서핑 등을 하느라 허비하는 시간이 1주일에 24시간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한 달이면 4일, 10개월이면 무려 40일을 낭비하는 셈이다.

휴대폰, 문자 및 메일, 컴퓨터 게임, TV 시청 등은 학습 효과를 떨어뜨리는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휴대폰과 컴퓨터 게임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고교생 학력저하의 주범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숙학원에서 공부할 경우 이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된다. 대부분의 기숙학원은 휴대폰 휴대를 금지한다. 인터넷 시설은 아예 없애두고 있다.

친구들과 격리되고 술집·당구장·PC방 등 유해환경에서 차단되니 자연히 학습 시간이 늘어난다. 기숙학원에서 학생들은 하루 평균 15~17시간을 공부한다.

기숙학원들은 스트레스 등 학생들의 정신적 장애 제거에도 세심히 주의를 기울인다. 반 담임은 기본이고, 야간에도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잠자는 생활담임을 두고 있다. 이들이 학생 하나하나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즉각 면담해 고민을 줄여준다.

학생들이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두고 있다. 등산, 레크레이션, 바비큐 파티, 족구·축구 대회를 열기도 한다. 헬스·사우나 시설을 둔 곳도 있다.

공부하다 모르거나 궁금한 부분이 있을 때 해결되지 않으면 그보다 더 답답한 것은 없다. 혼자 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문제에 매달리다 보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기숙학원들은 밤늦은 자율학습 시간에도 교사들을 배치해둔다. 학생들은 공부하다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즉시 교사를 찾아 해결할 수 있다. 질문시간을 별도로 두고 질문수당을 줘가며 담당 강사를 배치해 둔다.

기숙학원들은 또 강사진이 좋고 학원마다 나름대로 효과적인 학습 시스템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일반 고교보다 더 철저히 학생들을 관리한다. 매주 또는 격주로 담임이 학생을 면담해 학습 지도를 해주고 고민도 해결해 준다.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기숙학원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성적이 크게 오른다. 원점수 기준 평균 50~70점 정도가 오른다.

집에 재수생을 두고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재수를 하는 학생이든 이를 쳐다보는 가족이든 심사가 불편하다. 피차 보지 않는 게 마음도 편하고 공부도 잘 된다며 자녀를 기숙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도 많다.

물론 단점도 없지 않다. 난생 처음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생활해야 하고 완전히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숙식비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물론 숙식비는 집에서 공부할 때도 드는 것이고 용돈까지 따지면 비슷하거나 덜 든다는 기숙학원 관계자들의 주장도 있다.  

조용현 객원기자 jowas@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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