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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마인드웨어'도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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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동안 고교 평준화를 둘러싼 담론이 무성하더니 최근에는 사교육 경감 대책의 일환으로 수준별 교육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평준화 정책과 수준별 교육에 대한 수많은 찬반 논쟁 사이에 꽤나 식상해 버렸지만 그래도 한마디 거들고자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린 아무래도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한 것 같다. 사소한 예로 옷입는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국 거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복장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각자에게 체감되는 주관적 기온에 따라 옷을 입기에 모피와 숏팬츠가 공존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예를 들어 10월의 기온이 20도 가까이 올라가더라도 반팔은 찾아보기 어렵다. 으레 10월이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는 통념에 따라 자발적으로 주류 패션을 따른다. 사실 언어적 표현에서도 그런 사고를 읽을 수 있다. 누군가 나와 생각이 다를 때 '생각이 틀려'라고 표현한다. 이때 틀리다는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다르다'를 함의한다. 하나의 생각으로 합치되는 것을 기준으로 보니 '다름'이 '틀림'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평준화 논쟁의 요체는 결국 학교들의 '다름'을 인정하느냐의 문제다. 학교 간의 차이를 없앤 평준화 이후, 사칙연산도 제대로 못하는 학생부터 몇년씩 선행하여 미적분까지 이해한 상이한 수준의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학 수업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우수아에게는 시시한 수업이, 부진아에게는 버거운 수업이 되어 왔다. 학교 '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색하게 된 것이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수준에 상응하는 수준별 수업으로, 수준별 수업은 일명 학교 내의 비평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평준화나 수준별 교육은 '집단주의'로 표현할 수 있는 우리의 정신적인 전통과 부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사회구성원 전체가 도달해야 할 기준이 먼저 설정되어 있고 개개인이 이에 맞추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또 노력을 통해 부족한 능력을 보완할 수 있다는 '노력주의'도 한몫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학교들의 수준은 동일해야 하고 학교 수업 역시 동일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이에 반해 개인주의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서양에서는 개인의 능력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교육제도가 그 차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우리와 반대 방향의 사고를 한다. 이 입장에 서면 다른 재능의 학생을 위한 차별화된 학교와, 차별화된 수업은 너무 당연해진다. 약간 비약한다면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공자의 사상, 이와 달리 개개인은 모두 다른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제도는 사회구성원의 가치관과 유기적 관련성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학교 차이 인정이나 수준별 교육의 표류 현상은 동양적 정서와의 불협화음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제도가 소프트웨어라면, 이를 뒷받침하는 물리적 인프라는 하드웨어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가 더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그 제도를 따라야 할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정서와 같은 '마인드웨어'가 바로 그것이다.

무한경쟁 시대를 대비하는 휴먼 캐피털 개발의 중요성과 우수한 학생들이 모였을 때의 금상첨화 및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비평준화를 옹호하게 된다. '기회에 대한 평등'이 아닌 '능력에 따른 평등'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비평준화로 마음이 기울지만, 우리의 기저에 깔린 마인드웨어는 평준화에 가까운 것같다. 한 개인도 이렇게 평준화에 대해 모순적이고 다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진대, 그런 개인들이 생각을 쏟아내니 논의가 무성할 수밖에 없다. 속시원한 솔로몬의 해법은 없겠지만,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마인드웨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차이'를 참지 못하는 마인드웨어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평준화로 유지하든지, 혹 비평준화라는 소프트웨어를 가동시키려면 '차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마인드웨어를 바꾸어가든지 해야 할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