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불의 사나이’ 눈 현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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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까마득한 곳도 생생히 볼 수 있는 ‘6백만불의 사나이’의 인공 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21일(현지시간) 초박형 전자회로를 내장하고도 착용에 불편이 없는 최첨단 콘택트렌즈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특수 렌즈에는 몇 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 두께의 전자회로와 적색 다이오드가 붙어 있다. 회로 판이 머리카락 1000분의 1 정도로 얇아 눈에 쓰더라도 일반 콘택트렌즈처럼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착용 방법도 일반 렌즈와 똑같고, 일단 끼면 이물감을 거의 못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토끼에게 착용시켜 본 결과 2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개발 과정에서 연구팀이 겪은 어려움은 인체에 해가 없는 회로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일반 콘택트렌즈는 부드러우면서도 신축성이 뛰어난 유기물질로 만들어 진다. 그러나 회로를 구성하는 재료는 금속성이어서 작동 중 유해 물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안전한 물질을 찾아 냈다.

 이번에 설치한 전자회로와 다이오드에 특별한 기능은 없다. 렌즈를 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얇은 회로 판을 입히고도 안전한 콘택트렌즈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성과다. 그럼에도 학계에서는 큰 진전으로 평가한다. 영화에서처럼 망막에 가상화면이 뜨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바박 파비즈 교수는 “망막 위로 회로가 만들어 내는 화면을 표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수많은 곳에 응용이 가능해진다. 우선 수정체 이상 등으로 잘 안 보이는 환자의 경우 수술 없이 시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또 운전사, 비행기 조종사 망막 위에 속도·방향 등을 펼쳐 보일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업체는 콘택트렌즈를 눈에 끼고 즐기는 컴퓨터 게임을 개발할 것이다. 아직은 공상영화 같은 얘기지만 앞으로 특수 콘택트렌즈를 끼면 몇 킬로 앞이 훤히 보이는 천리안이 될지도 모른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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