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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농축 우라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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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친애하는 대통령에게. 최근 연구 결과 우라늄이 새롭고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발견됐습니다. …새로운 발견으로 폭탄이 제조될 것이고, 이는 아주 강한 폭발력을 가질 것입니다. …정부의 신속한 대처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1939년 아인슈타인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낼 때까지만 해도 핵폭탄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믿은 사람은 극소수 물리학자에 불과했다. 사실은 'E=mc2'이란 공식을 만들어내 핵개발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그 위협을 실감하지 못한 채 편지를 썼다. 이 무렵 아인슈타인은 핵폭탄의 현실화 가능성을 "어둠 속에서 허공에 총을 쏴 새를 맞히는 것"에 비유했다.

그런 아인슈타인이 굳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같은 유대인 망명객 물리학자인 레오 질라트의 설득 때문이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들에게 히틀러가 핵폭탄을 개발해 제2차 세계대전에 승리한다는 것은 악몽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반 유대주의 폭도들이 자신의 별장을 습격하고, 상대성이론이 실린 책이 화형식을 당하는 수모를 잊지 못했다.

우라늄235의 핵분열 연쇄반응을 확인한 실험은 이미 38년 독일의 과학자 오토 한이 끝냈다. 핵반응 과정에서 질량이 감소하며, 그 감소한 질량은 E=mc2 공식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명백했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조차 핵폭탄에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일반적인 우라늄 덩어리의 99% 이상이 연쇄반응을 하지 않는 우라늄238이고, 우라늄 235는 0.7%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폭탄을 만들 만한 분량과 질의 고농축 우라늄(HEU: Highly Enriched Uranium) 생산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미국은 결국 나치가 항복한 직후인 45년 여름 HEU 핵폭탄을 만들어 냈다. 과학자들은 이미 승패가 갈린 상황에서 대재앙이 될 핵폭탄의 사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핵폭탄은 이미 과학자들의 손을 떠나 있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세상은 핵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눠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북한이 핵폭탄을 만든 과학자들의 예언을 벗어나긴 쉽지 않을 듯하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