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열이 나던 아이가 어느새 열이 내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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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나라의 난쟁이들 오치 노리코 글, 데쿠네 이쿠 그림, 위귀정 옮김, 베틀북, 32쪽, 9000원, 4세 이상

운동화나 가방에 그려진 동화 속 주인공 얼굴, 작은 집과 오솔길이 그려진 방 안의 작은 커튼, 혹은 동물 그림이 그려진 접시…. 아이들은 작은 형상 하나에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게도 크기도 절대 가늠할 수 없는 상상의 힘이다.

『이불 나라의 난쟁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그 문을 작은 이불 자락에서 찾아냈다. 깜찍하다. 아이들이 들어가는 문의 비밀을 기발하게 낚아챈 작가의 상상력이 그렇고, 난쟁이 마을을 생생한 터치로 펼쳐낸 그림이 그렇다.

그 세계는 의외로 아주 엉뚱한 데서 시작된다. 온몸이 불덩이여서 자리에 누워 뒤척이던 아이는 우연히 이불에 주름이 잡힌 것을 보고 그것이 꼭 산처럼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볼록 솟아 있는 이불은 어느새 산이 된다. “오호레이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이불의 주름에서 스키를 타는 난쟁이들이 보인다. 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아름다운 난쟁이 마을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두막집도 보이고 가족을 부르는 난쟁이 엄마도 보인다. 지붕 위에 올라가 눈을 치우는 사람, 모닥불을 쬐며 빙글빙글 춤을 추는 아이들….
 
숨죽이고 난쟁이들을 지켜보던 아이가 웃음을 터뜨린다. 난쟁이들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아이에게 열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힘을 모아 눈을 만들어 이마에 뿌려준다. 스르르 잠이 든 아이. 아침에 깨어나니 신기하게도 열이 내렸다.

아이를 돕는 난쟁이들의 이야기는 내용도 따뜻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아기자기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에 있다. 난쟁이 마을은 16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 화가인 피터 브뢰겔의 겨울 풍경 그림들을 많이 닮았다. 소박한 마을 사람들이 다 주인공 같아서 그림 한 장만 꼼꼼히 들여다봐도 재미난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질 것 같다. 그림을 그린 데쿠네 이쿠는 브라티슬라바 국제그림책 원화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주기 위한 작가의 감성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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