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던 금융상품'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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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서는 '잊힌 상품'으로 취급돼 왔던 발행어음.어음관리계좌(CMA).환매조건부채권(RP) 등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만기가 1년 이하로 짧으면서 은행권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다는 게 공통된 특징이다.

최근 시중 부동자금(만기 6개월 미만의 수신 평균잔액)의 단기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이들 상품이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발행어음은 금호.한불종금 등 전업 종금사나 동양종합금융증권.LG투자증권.우리은행 등 종금사를 합병한 증권 또는 은행이 발행하고 지급까지 보증하는 것으로, 은행의 정기예금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발행어음은 회사 측이 운용능력에 따라 금리를 탄력적으로 적용할 여지가 많아 정기예금보다 금리가 높다.

기업어음.채권 등에 투자하는 어음관리계좌(CMA)의 인기도 되살아나고 있다. CMA는 하루 이상 1년 이내로 투자하면서 언제든지 입출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은행의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이나 투신사의 머니마켓펀드(MMF)와 유사하다. 그러나 MMDA나 MMF는 가입시와 인출(환매)시 금리가 거의 변동이 없는 데 비해 CMA는 예치기간이 길어질수록 금리가 높아지고, 예치 기간이 같을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다.

동양종합금융증권 김병철 상품운용팀장은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금리가 높은 발행어음.CMA를 찾는 개인투자자들이 늘고 있다"며 "특히 투신권과 저축은행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깊어진 것도 이들 상품이 인기를 끈 요인"이라고 말했다. 개인들의 수요가 늘면서 종금사와 증권사들은 발행어음의 법인 몫을 줄여 개인투자자에게 돌리고 있다. 대규모 입출금이 빈번한 법인에 비해 개인들의 자금이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금호종금은 2000년 이전에는 발행어음.CMA 잔고의 70%를 법인이 차지했지만 현재는 개인자금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들의 수요가 늘고는 있지만 발행어음.CMA의 전체 잔고는 거의 변동이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행어음 등의 수탁고는 9조5000억원에서 11조4000억원에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LG투자증권 장근중 팀장은 "대출을 통해 고수익을 올릴 만한 기업이 마땅치 않아 발행어음 규모를 무작정 늘릴 수 없다"며 "회사별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하는 개인 비중을 늘리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의 환매조건부채권(RP)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고 있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RP 매도잔고는 지난해 1월 4132억원에서 올 1월에는 1조3466억원으로 1년 새 세배 이상 늘었다. RP는 정기예금에 비해 금리가 높고, 약정기간 중 확정금리가 적용돼 금리 변동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한국투신운용 정원석 채권운용본부장은 "발행어음 등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것은 시중자금이 고금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저금리와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외면 현상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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