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35> GK 정성룡의 인간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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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운재(수원)가 비우고 간 축구대표팀 골키퍼 자리에 가장 근접한 선수가 정성룡(23·포항·사진)이다. 올림픽대표팀 주전인 정성룡은 A대표팀에서도 유력한 선발 후보다. 정성룡의 성공시대 뒤에는 남모를 아픔과 기구한 드라마가 있다.

경기도 광주중 3학년 때 서귀포 전지훈련에 참가한 정성룡은 서귀고(현 서귀포고) 설동식 감독의 눈에 띄었다. 정성룡을 데려오기 위해 설 감독이 서울행 비행기를 타던 시간, 오랜 병환에 시달리던 성룡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성룡은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넋을 잃었다. 파출부 일을 나가시는 어머니, 중증 장애를 지닌 누나와 함께 거친 세파를 헤쳐나가야 할 운명이 막막했다. 어머니는 설 감독의 손을 붙잡고 “우리 성룡이 잘 좀 부탁합니다”라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서귀포로 내려갈 당시 정성룡의 키는 1m76㎝로 골키퍼로는 크지 않았다. 팔만 유난히 길었다. 세파의 그림자 때문인지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없었다. 정성룡은 1년 동안 엄청나게 먹었다. 남들이 공깃밥을 먹을 때 커다란 양푼으로 먹었다. 1년 동안 키가 10㎝나 자랐고, 2학년 때 지금의 키(1m90㎝)가 됐다.

서귀고 2학년 때 정성룡은 ‘귀인’을 만났다. 아테네 올림픽팀 골키퍼 코치였던 김성수씨였다. 김 코치는 당시 동의대 감독을 그만두고 잠깐 쉬는 동안 설 감독의 부탁으로 서귀고 선수들을 지도했다. 한눈에 ‘물건’임을 알아본 김 코치는 정성룡을 혹독하게 조련했다. 2학년 하반기에 정성룡은 이미 ‘고교 넘버 1’이 돼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프로팀 여기저기서 정성룡을 달라고 했다. 진로는 포항 스틸러스로 결정됐다. ‘계약금 2억6500만원’이 적힌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고 펜을 든 어머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평생을 모아도 만져 보기 힘든 돈을 한 번에 받게 된 것이다.

특급 대우를 받으며 프로에 들어간 정성룡이지만 초반은 갑갑했다. 포항에는 ‘K-리그의 전설’ 김병지가 버티고 있었다. 정성룡은 2004년과 2005년 단 한 경기도 뛰어보지 못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군 입대를 생각하던 순간 먹구름이 걷혔다. 김병지가 서울로 이적하고, 그를 조련했던 김성수 코치가 포항에 부임한 것이다. 2006년부터 펄펄 날기 시작한 정성룡은 지난해 올림픽팀 주전 자리를 꿰찼고, 팀의 K-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FA(자유계약 선수) 자격을 얻은 정성룡은 지금 FA 최대어로 각 구단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억원에 달하는 이적료를 내고도 그를 데려가겠다는 구단이 있을 정도다. 새 팀에서 연봉 4억원 정도를 받게 될 정성룡은 10년만 착실히 모으면 50억대 부자가 된다.

지독한 가난과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고단함을 딛고 일어서 ‘인생 역전’ 드라마를 쓰고 있는 정성룡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영재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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