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엘리트 멸종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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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엘리트’는 실종 위기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중문화를 배척하면서 미술과 연극, 클래식 음악, 오페라 등 ‘고급문화’를 지향하는 문화 엘리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옥스포드대 사회학 교수 탁윙찬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영국 경제사회연구원의 연구기금을 받아 영국, 미국, 칠레, 프랑스, 헝가리, 이스라엘, 네덜란드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쓴 논문 ‘사회적 지위,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문화적 소비’에서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연구 과정에서 설문 참가자의 교육 수준, 수입, 사회 계층 등이 반영됐다.

이들 연구팀은 동물학자들이 동물의 섭생 습관에 따라 동물을 분류하는 방법을 원용해 문화 소비자를 네 부류로 나누었다.

① 편식형(Univores): 대부분의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TV, 대중음악, 할리우드 영화 등 대중문화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사람. 하지만 발레나 클래식 음악, 연극, 미술 관람은 싫어한다.

② 잡식형(Omnivores): 발레, 교향악, 오페라를 즐기면서도 대중문화 소비에도 열성적인 사람. 오페라 공연도 좋아하지만 레드 제플린 콘서트에도 간다.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무엇을 보고 즐길지 결정하며 새로운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③ 결핍형(Paucivores): ‘고흐전’ ‘오르세 미술관전’ ‘루브르 박물관전’ ‘진시황병마용전’(秦始皇兵馬俑展)‘밀레전’ 같은 블록버스터 미술 전람회나 빈 필하모닉 등 유명 공연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 아방가르드나 현대미술에는 별 관심이 없다.

④ 나태형(Inactives): 휴일이면 하루 종일 TV 앞에 붙어 사는 사람. 전시회나 음악회에 전혀 가지 않고, 길거리에 전시된 야외 조각을 들여다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는 일도 없다.

연구 결과 고급 문화만 즐기고 대중문화는 배척하고 기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국에서는 연극, 무용, 영화에서는 62.5%가 편식형, 37.5%가 잡식형으로 나타났다. 음악에서는 편식형이 65.7%, 감상만 하는 잡식형은 24%, 나머지 잡식형은 10.3%로 나타났다. 미술에서는 나태형이 58.6%, 결핍형이 34.4%, 잡식형이 7%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듣고 보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출신 환경에 따른 사회적 계층(social class)이 아니라 교육과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에 앞서 실시한 연구에서 사회적 지위란 출생이나 경제적 부가 아니라 직업에 의해 결정된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어떤 신문을 구독하는지, 어떤 여가활동을 하는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진 중의 한 명인 골드서프는 이번 보고서 때문에 노동당 정부가 순수예술(고급문화)에 대한 지원 예산을 삭감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장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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