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 좋아야 와인도 제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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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37면

와인명
몽자르 뮈네레 ‘본 로마네 1급 프티 몽’
2004 Mongeard Mugneret Vosne Romanee ‘Les Petits Monts 1er Cru’
원산지
프랑스, 부르고뉴
포도 품종
pino noir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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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와이너리 몽자르 뮈네레가 만든 우수한 와인이다. 30ha의 포도밭에서 연간 생산되는 양은 17만 병 정도. 꼼꼼하고 정확한 가지치기, 세심한 수확, 전통적인 와인 메이킹 방법을 고수함으로써 많은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친구들과 와인을 들고 갈 수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난 연말부터 몇 번이나 만나기로 해놓고 일 때문에 번번이 약속을 취소해온 나는 근사한 부르고뉴 와인으로 그동안의 미안함을 사과하고 싶어 도멘 몽자르 뮈네레 ‘본 로마네 1급 프티 몽’ 2001년산을 가져갔다.

금색 손 마크가 라벨에 들어가는 몽자르는 현 당주 뱅상이 8대째 오너인 전통 있는 도멘이다. 그 마크가 상징하듯 감농약재배(減農藥栽培)로 공들여 포도를 기르기 때문에 과일 맛이 풍부하고 진해 우아함과 섬세함을 두루 갖춘 근사한 와인을 만든다. 더욱이 이 프티 몽이라는 밭은 등급은 1급이지만 맛은 특급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도 그럴 것이 와인의 신 앙리 자이에의 최고 걸작인 단독 밭 크로 파랑투, 본 로마네의 위대한 특급 밭 리쉬부르에 인접해 있으니 그 맛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명생산자가 만드는 아름다운 와인 프티 몽! 친구들도 분명 감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스토랑의 소믈리에가 정성껏 따라준 프티 몽은 향기롭기는 했지만 타닌이 강하게 도드라졌고 과일 맛이 안쪽에 꼭꼭 숨어 있었다. 3개월쯤 전에 같은 프티 몽 2000년산을 마셨을 때는 요염한 단맛과 투명한 우아함에 압도됐건만 지금은 그 어느 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거 동면 중이었나 보네.” 나는 2001년산 선택을 후회했다. 2000년산 부르고뉴는 연말부터 겨울잠에 든 것 같아 2001년산을 선택한 것인데….

그런데 동석한 친구들은 “근사해” “과일 맛이 환상적이야”라고 감동한다. “아냐, 이 와인은 지금 자고 있어. 프티 몽이 깨어나서 활짝 피어났을 때는 훨씬 멋져”라고 설명했지만 “지금도 충분히 맛있어”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칭찬한다. 나는 “궁극의 모습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야”라고 그냥 흘려들었고 내심 2001년산 부르고뉴는 당분간 봉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등골이 오싹하면서 오한이 들었다. 이윽고 아주 매운 김치를 먹었을 때처럼 목까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에는 미각이 완전히 둔해지고, 코가 막혀 와인과 소주 냄새도 구분할 수 없게 됐다. 그랬다. 나는 감기에 걸린 것이다. 이상한 것은 와인도 친구들도 아닌 나의 미각이었던 셈이다.

“과일 맛이 느껴지지 않으면 감기, 쓰게 느껴질 때는 위장병을 의심해라.” 남동생의 지론이다. 실력 있는 소믈리에도 몸 상태가 나쁠 때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실패한다. 하물며 아마추어인 우리는 와인 맛이 이상하다고 생각될 때면 부패와 동면을 의심하기에 앞서 자신의 혀가 건강한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와인이나 마시는 사람이나 모두 건강한 상태일 때 비로소 행복한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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