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대가 요구하는 우정사업 민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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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우정 개혁을 밀어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민간 택배업체들에 치인 일본 우정공사는 금융 쪽에 매달렸다.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고 세금 특혜까지 받으면서 무려 350조 엔이 우편예금과 우편보험에 몰려들었다. 일본 전체 금융자산의 30%에 달하는 이 거대한 돈은 일본 정부의 공공사업 뒤치다꺼리에 투입되는 등 전혀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우정 개혁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다. 우정 민영화 법안이 부결되자 중의원까지 해산시켰다. 일본 국민은 결국 그의 손을 들어줬고, 중의원 480석 중 306석이나 몰아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우정사업을 ‘단계적 민영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규모에서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우정사업본부도 일본 우정공사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정사업본부는 3만 명 이상의 공무원을 거느리고 6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굳이 민간과 경쟁하는 금융분야에 정부가 우체국 금융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본처럼 공공서비스인 우편업무는 공기업의 틀을 유지하되 우체국 금융은 완전 민영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우정사업 민영화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는다. 이미 만국우편연합(UPU) 소속 191개국 중 105개국이 우정사업을 공사화했다. 네덜란드·독일·아르헨티나·싱가포르 등 11개국은 완전 민영화했다. 도이치포스트는 2002년 민영화 과정에서 미국의 DHL을 합병해 세계 최대의 항공·해운 물류회사로 올라섰다.

 전국체신노조는 우정사업 민영화에 반대하며 우정청으로 승격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일에는 ‘공사화 저지 및 우정청 설립’을 위한 궐기대회를 연다고 한다. 안정적인 공무원 신분이 바뀐다는 점에서 이런 반발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정부가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을 떠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민영화는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민영화를 통해 우정사업본부가 세계적 금융회사·물류회사들과 당당히 경쟁하면서 포스코나 KT&G처럼 굴지의 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