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동차100년사>4.獨 산업의 상징 벤츠社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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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작년봄 가수 조용필씨가 자동차 사고로 부상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몰던 벤츠 300SEL은 흉칙하게 찌그러져 폐차될 정도였다.조용필씨는 가벼운 상처뿐이었으나 취재기자들을 피해 병원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일본 NHK방송은 사고장소와 폐차된벤츠를 촬영해 가 「튼튼한 벤츠」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했다. 벤츠의 명성(名聲)을 확인시켜 주는 일화(逸話)다.
1세기가 넘는 자동차 역사와 그 시발(始發)을 같이하는 벤츠는 「근대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틀리프 다임러(1834~1900)와 카를 벤츠(1844~1929)두 자동차거인(巨人)으로부터 시작된다.다임러와 벤츠 두사람은 원래 1882년과 1883년 각각 달리 자동차회사를 차려 운영했고 다임러 사후(死後)인 1926년 합병돼 오늘의 「다임러 벤츠」란 상호를 갖게 된다.
두 사람 다 장인(匠人)정신으로 자동차기술개발에 몰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그러나 다임러는 자기가 개발한 엔진을 자동차뿐만아니라 선박과 항공기에도 응용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현재벤츠의 상징인 엠블럼이 세 꼭지별 모양으로 돼 있는 것도 바로육.해.공 세분야로 뻗어 나가겠다는 다임러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때문에 다임러는 자동차보다 오히려 엔진 자체에 힘을 쏟았다.「최고급이 아니면 안 만든다」(Das Beste, oderNicht)는 자부심으로 기술개발에 인생을 걸었고 이 정신은 훗날 다임러 벤츠의 캐치프레이즈로 이어진다.독일 자 동차산업의또 다른 증인인 카를 벤츠는 1886년 세계최초로 휘발유엔진을쓰는 자동차를 만들었고 이것이 독일 정부 특허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동차산업의 시조(始祖)라는 명성을 얻었다.
다임러가 엔진개발에 몰두했다면 벤츠는 자동차 안전에 더 신경을 써 뒷날벤츠 기본이미지인 「강력한 엔진과 안전한 차」의 토대를 쌓았다.
1차대전 이전 다임러사와 벤츠사는 모두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게 됐고 전쟁준비에 두 회사의 역할이 컸다.그러나 패전으로 독일 산업이 타격을 입었고 다임러와 벤츠 두 회사도 어려움을 겪다가 산업합리화차원에서 합병돼 오늘의 「다임러-벤 츠」로 재탄생한 것이다.
차 이름은 메르세데스 벤츠로 정했다.메르세데스는 합병전 다임러의 판매대리인이었던 에밀 옐리네크의 10살 난 딸의 이름.
옐리네크는 다임러차에 메르세데스란 이름으로 자동차경주대회에 나가 우승을 거둔 것을 계기로 차이름에 메르세데스를 쓰기 시작했던 것.
1차대전이후 대공황을 합병으로 극복하고 30년대에 들어선 벤츠는 유럽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자동차경주대회를 휩쓸면서 독일의 자존심으로 등장했다.
93년 메르세데스 벤츠는 승용차 51만대,상용차 25만대등 모두 76만대를 팔아 자동차에서만 약 3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李杞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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