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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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래의 「어강」에 막힌 거 아녜요?』 역사박물관 강의실에서만나자마자 서여사가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실은 나도 그 대목에서 막혔거든요.허지만 이젠 윤곽이 잡힌 상태예요.』 환하게 웃고 있다.
『뜻을 알아내셨군요.』 『아직까진 짐작이지요.그래도 이 짐작이 옳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왜 「어간」이란 말이 있잖아요.「넓은 사이」의 뜻이죠.「어」자체는 「틈」을 가리키는 말이구요.「정읍사」의 「어강」은 이 「어간」과 한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경상도 분들은 흔히 「어강이 막힌다」고들 하시잖아요? 이건 「어간이 막힌다」는 말이거든요.「가슴(사이가)막힌다」「속이 상하다」는 뜻이지요.ㄴ을 ㅇ으로 발음하고 있는 셈이에요.고대엔 아마 백제사람도 이런 식으로 발음하고 있었는지 모르 겠어요.요즘도 「얼른」을 「얼릉」으로 발음하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어간? 넓은 사이?』 길례는 되뇌었다.
『그래요.「공간」「한가운데」의 뜻이기도 하죠.그러니까 「어긔야 어강 됴리」는 「어기어서 공간 좋으리」라 풀 수 있다는 얘기지요.』 여성의 두다리 사이를 「어강」으로 보는 견해다.
-어기어서(에어서) 여음(女陰)좋으리.아,자롱지리(아롱지리).힘있게 치솟은 「남성」이 「여성」을 칼로 에듯 어기어서 어느새 깔개가 아롱다롱 「이슬비」로 젖어 무늬지는 모습.과연 음사다운 표현이다.그러나 이것은 속노래에 해당하는 가 사 풀이요,겉노래 쪽은 평범하고 점잖다.
달님이 밤하늘에 높이 솟아 두루 비추어 주시면 온누리가 환하여 좋으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속의 속노래,즉 진짜 노래는 매우 처절하다.「민중 궐기」가 힘차게 치솟아 칼로 적(敵)을 에이면 백제의 강토가 빛나리라는 노랫마디.
『세겹 노래 중의 한겹이긴 해도 어떻든 야한 노래임엔 틀림없어요.그러니 성종과 중종이 야단했겠지요?』 얌전히 접은 조각보를 들고 아리영이 나타났다.약과를 싸서 길례가 가져간 조각보다. 『유밀과(油蜜果) 감사합니다.맛있게 잘 들었습니다.보자기를두고 가셨다고,아버지가 전해 올리라 하시더군요.』 『저희 집 딸아이가 만든 건데 댁에다 두고 쓰시라고 갖다 드렸었지요.』 길례의 말에 아리영이 놀란다.
『따님이 손수 만드신 건가요?』 진초록과 연초록의 항라 조각천들을 얌전히 잇댄 그 보자기의 네 귀엔 진홍 고름이 달려있다.빛깔과 모양의 조화가 돋보인다.
『재주있는 따님이신가봐.참 곱기도 해라!』 서여사도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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