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 중국’ 문화·예술 업그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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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국가대극원의 개관은 단순히 새로운 공연장이 하나 생겼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21세기 중국이 정치군사적으로 강한 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문화적으로 소프트파워를 발휘하는, 선진국으로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신중국 건설 이후 사회주의 중국은 ‘인민의 예술’을 강조해, 극장의 예술적 또는 기술적 추구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공시설로의 목적에 부합하는 강당식 대극장이 주류였다. 반면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추구하기엔 다소 열악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대극원은 시설 수준뿐 아니라, 예술적 건축물로도 중국 극장 건축의 새 장을 연 획기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공연장이 갑작스레 탄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옛부터 쌓여온 풍부한 중국 공연예술의 전통이 현대와 만나 일찍이 동서양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새로운 극장을 건축해낸 것이다. 중국엔 경극은 물론 2001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곤극을 포함하여 300종이 넘는 전통극 양식이 있어 지역마다, 명절마다 공연돼 왔다. 따라서 극장 문화도 일찍부터 발달해 왔다.

우리나라는 영화 ‘왕의 남자’에서 보았듯이 주로 열린 공간, 즉 ‘마당’에서 땅재주와 줄타기·탈춤 등이 놀아졌던 데 비해, 중국은 이러한 마당에서의 가무와 백희(百戱) 공연 외에 비교적 일찍부터 무대가 지어지면서 무대극이 발달했다. 송대에 이미 날씨에 관계없이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정자와 같이 지붕이 있는 공간인 무루(舞樓)를 건축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도시에서는 상시적으로 놀이와 공연을 즐기기 위해 대형 종합 오락장인 ‘와사(瓦舍)’와 개별 무대인 ‘구란(句欄)’ 극장이 있었다.

특히 다양한 민간 신앙이 존재했던 중국의 향촌에는 신묘마다 신에게 바칠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무대를 건축했고, 중국 전통극의 전성 시대였던 명청대에는 전문 공연 공간인 주루(酒樓)극장, 다관(茶館)극장에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공연을 보는 중국적 관극 문화가 자리잡았다.

중국 호화 궁정 극장으로는 자금성 안에 있는 창음각(暢音閣)이나, 이화원에 있는 덕화원(德和園) 3층 희대가 아직도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외형만이 중국의 모든 건 아니다. 그들에게 면면히 이어져 온 건 오히려 정신이다. 그들은 겉으론 중국을 앞세우는 듯 보이지만 고대부터 서역 문물 수용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처럼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다. 중화란 그런 낯선 문명을 자기화하는 중국인 저력의 산물이다.

국가대극원 역시 프랑스 건축가의 초현대식 건물로 다소 생뚱맞을지 모르나 이를 중국인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문화의 창으로 흡수했다. 이미 경제적, 이념적 제약에서 한껏 벗어난 그들이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단지 인프라 구축에만 머물고 있지만 경극과 곤극의 현대화라는 새로운 문화 콘텐트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문화 상품을 유포시킬지도 모른다. 어쩌면 국가대극원은 그 무시무시한 시도의 전주곡인지도 모른다.

오수경 교수<한양대 중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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