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동성결혼 금지' 카드 꺼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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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선을 노리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동성결혼을 금지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문화적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보수층의 결집을 노리는 선거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24일 특별연설에서 "일부 판사들과 주(州) 공무원들이 결혼의 정의를 다시 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결혼의 정의가 더 이상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분명히 정의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동성결혼은 이달 초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이 '동성결혼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동성결혼 증명서가 3000통 이상 발급되면서 미국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부시 노림수는 보수층 결집=부시 대통령은 ▶급증하는 재정적자▶불법입국자에 대한 취업권 부여 등으로 불만이 커진 보수층을 달래기 위해 동성결혼 반대를 결심했다고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특히 경제불황과 이라크 정정불안으로 수세에 몰린 데다 민주당이 전례 없이 강력한 단결력을 보이며 선거판세에서 앞서나가자 동성결혼 같은 '문화적 이슈'를 이용해 역전을 노리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는 분석이다.

이번 제안으로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선두주자인 존 케리(매사추세츠주)상원의원과의 차별성 부각도 노리고 있다.

케리 의원은 동성결혼에는 반대하지만 동성결혼 금지 문제는 각 주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호한 입장을 보일 경우 케리를 '흐릿한 인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부시 대통령의 계산일지도 모른다.

◇민주당의 반격=개헌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조차 "개헌으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유주의 성향의 케리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층'이 이번 조치에 자극받아 공화당으로 이탈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케리 의원이 24일 "부시 대통령은 미국인들을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즉각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와 CBS방송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61%가 동성결혼에 반대하지만 이를 개헌 대상으로 삼는 데도 10명 중 6명이 반대 의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강찬호 기자

*** 미국의 헌법 개정 절차

<1단계>

하원의 3분의 2 (290석) 찬성
상원의 3분의 2 (60석) 찬성
또는 50개주 중 3분의 2(33개주)가 헌법 제정회의에 요구

<2단계>

50개주 중 4분의 3(38개주) 찬성 있으면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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