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해바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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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해바라기’-박성우(1971~ )

담 아래 심은 해바라기 피었다

참 모질게도 딱,

등 돌려 옆집 마당 보고 피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말동무하듯 잔소리하러 오는

혼자 사는 옆집 할아버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모종하고 거름 내고 지주 세워주고는

이제나 저제나 꽃 피기만 기다린 터에

야속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여

해바라기가 내려다보는 옆집 담을 넘겨다보았다

처음 보는 할머니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은

옆집 억지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등에 슬몃슬몃 손 포개면서,

우리집 해바라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옆집 억지쟁이 할아버지지만 따뜻하게 감싸안는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 담 아래 해바라기가 등돌려 옆집 마당을 보고 피었다고 했다. 시인의 시골 농가에는 서울 사는 시인 형들이 그리우면 보려고 심은, 하나하나 이름 붙인 나무도 여러 그루가 있단다. 외롭게 사는 옆집 노인의 사랑을 응원하는 이 해바라기에는, 아마도 ‘억지쟁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을 것이다. <박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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