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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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2부 불타는 바다 비내리는 나가사키(3) 혼자 남은 태성이추워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태성은 건물을 훑어보았다.비바람에 바랜 목조 건물이 까맣다.그렇다면 이곳은 육손이라는 사람이 사는 곳이고,인부들은 저 밑의 건물에서 산다는 얘기가 된다.저 옆 건물이 보기에도 식당이로군.
그런데,길남이를 따라는 왔지만 육손인지 칠손인지를 정말 믿어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이판에 몸붙이고 살자면,친일은 그만두고라도 일본사람이 다 되어야 하는 일인데.아무리 동포라고는 해도도망쳐 나온 우리를 호락호락 받아줄 리가 없지 않은가.
찌푸린 얼굴을 하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태성이 중얼거렸다.젠장헐.무슨 비는 오고 지랄이람.
방안에서는 육손이 거지꼴이 된 길남의 행색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짱 한번 좋구나.그섬이 어떤 데라구… 거기서 도망을 나와! 이놈이 간이 뒤집혀도 크게 뒤집힌 놈이 아닌가.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혹까지 한놈을 데리고 나오다니.』 『거기서 죽으나,도망치다가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길 오면 내가 널 숨겨줄 줄 알았다는 그런 말이겠다.』 『네.』 짧게 대답하고 길남이 고개를 숙였다.
지하터널 공사를 맡고 있는 육손은 시내에 일본여자와 사는 집을 따로 두고,거기서 그 여자가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말은 있었지만,한번도 그 일본여자는 이곳에 나타난 적이없었다.그의 집에 가봤다는 인부들이 없기도 마찬 가지였다.
육손이 혼잣말을 했다.
『애당초 거길 주선해서 보낸 내가 잘못이지.너도 들어서 알지않냐,지옥섬이라구.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데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섬을 빠져나왔다! 천황폐하가 아셨으면 훈장이라도 받아야 할 놈이로군 그래.』 잠시 후 육손이 물었다.
『그래… 어쨌으면 좋겠냐?』 『아저씨 하라는대로 따르겠습니다.안 받아주신다면 어디든 떠나겠습니다.아저씨한테 누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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