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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5.일본 나라 當麻寺 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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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고려시대는 귀족과 종교의 시대다.
고려의 귀족들은 호사스런 현세의 생활을 누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떠나 부처님의 불국토(佛國土)에 귀의할 것을 늘 꿈꿨다.
신비로운 비색(翡色)의 고려청자에서 세련된 귀족적 아름다움과종교적 경건함을 아울러 느끼게 되는 것도 이런 시대적 분위기 때문이다.
고려청자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려귀족들이 지니고 있던 현실의 풍요와 내세에의 염원을 함께 담고 있는 또다른 미술공예품이 고려나전칠기다.
고려의 나전칠기는 그 당시 이미 청자와 나란히 중국에서 「극히 정교하다(極精巧)」는 찬사를 들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하는 작품들이 매우 적어 그 실체가 상당부분 신비로 남아 있다.국내에 전하는 것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70년대 중반 우연한 기회에 구입한 작은 불자(拂子) 한점이 전부다. 세계적으로도 불과 20여점만이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고려나전칠기를 한번 본 사람들은 마치 신의 손길이 만든 것처럼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고려시대 나전칠기 가운데 두말없이 첫 손에 꼽히는 가장 뛰어난 걸작이 『나전대모 국당초문 염주합(螺鈿玳瑁 菊唐草紋 念珠盒)』이다.
***신의 손길 스민듯 정교 소장처는 일본 관서지방의 유서깊은 절 당마사(當麻寺).
아스카(飛鳥)시대에 세워진 당마사는 나라(奈良) 서남쪽 야마토분지 끝에 솟아있는 이상산(二上山)아래 넓게 자리잡고 있다.
이 절에는 헤이안시대 귀족의 딸이었던 중장희(中將姬)가 계모의학대를 피해 출가해와 아미타여래의 도움으로 연꽃 줄기에서 실을자아낸뒤 서방정토를 새긴 천을 짰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실제로 비단으로 짠 이 천은 현재까지 전해지며 『당마만다라(當麻曼茶羅)』란 이름으로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이런 전설을 간직한 당마사에 언제부터 고려나전 염주합이 전해졌는가.나라역에서 기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다이마(當麻)町이라는 작은 마을 한가운데 큼직하게 당마사가 위치해 있다.
절내의 5개 작은 암자 가운데 하나인 염불원(念佛院)주직이며당마사 대표를 맡고있는 다카키(高木隆弘)스님.
『전에도 한국에서 몇분이 찾아와 물었지만 글쎄,절에서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아주 오래전부터 염주합이 사보(寺寶)로 전해져왔다는 정도밖에는….』 나라국립박물관을 통해 미리 협조요청을 해놓아서인지 다카키스님은 『염주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실린 책이 있다』며 책 한권을 꺼내 보였다.이와나미서점이 펴낸 『대화고사대관(大和古寺大觀)』제2권 「당마사」편에서 일본의 고려나전칠기 전 문가 가와타 사다무(河田貞.나라帝塚山대학)교수는염주합에 대해 『이 절에 전래된 경위는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나전 가운데서도 보존상태가 완벽한 귀중한 유물』이라고 쓰고 있다. 나중에 취재협조를 위해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직접 만난 가와타교수는 합에 담긴 염주에 대해서도 『당초부터 염주합과 제짝이었는지 분명치 않다.그러나 염주 역시 시대가 올라가는 유물인 것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전해진 유래는 불분명해도 이 염주합은 고려나전 전성기의 3대 특징인 짧은 끊음질,금속선의 사용,그리고 대모를 이용한 배채법(背彩法)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명품이다.
나전은 중국 당나라때 칠기를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조개껍질을 사용한데서 시작됐지만 중국과 달리 고려에서는 조개껍질보다 훨씬 영롱한 빛깔을 띠는 전복 내피를 사용했다.
대모는 바다거북의 등딱지와 배껍질을 유리처럼 갈아 조개껍질 대신 사용한 수법이다.
대모전(玳瑁鈿)은 투명한 대모를 사용함으로써 그 밑에 칠한 색이 비쳐올라와 더욱 화려해 보이지만 남양산인 바다거북의 껍질을 구하기 어려워서인지 고려 후기로 오면서 점차 자취를 감춘다. ***중앙 국화무늬 가장 화려 염주합의 뚜껑은 범(梵)자를중앙에 두고 구슬무늬로 둥글게 3칸의 구획을 지어 조금씩 형태가 다른 국화문을 차례로 나전과 대모전으로 함께 장식했다.질서정연한 문양의 모습은 마치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불.보살들을 줄지어 모신 밀교의 우주관을 문양으로 상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일여래의 신광(身光)이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같이 덩굴처럼 뻗어간 당초문양은 은(銀)실로 된 줄기에 짧은 끊음질로 정교한 당초문잎을 촘촘히 박아넣어 불빛이나 햇빛 아래서 보면 마치 영롱하게 부서지는 빛의 물결처럼 보인다 .
가장 화려한 중간구획의 국화문에는 꽃잎.꽃심.꽃술에 번갈아가며 붉은색.황색으로 밑칠을 하고 그 위에 투명한 대모박음을 해당초문이 이루는 빛의 물결속에 붉은색 불.보살들이 둥둥 떠있는듯한 무한영겁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정양모(鄭良謨)국립중앙박물관장은 『현재 남아있는 고려나전은 대부분이 경함으로 이처럼 합형태를 갖춘 것은 매우 드물다』며 『완벽하게 보존돼온 이 염주합은 세계에 자랑할만한 고려나전명품』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당마사는 현재 일본 중 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이 염주합을 보다 안전하게 보존키 위해 나라국립박물관에 위탁보관하고 있다.
글=尹哲圭기자 사진=崔正東기자,나라국립박물관 제공 자문위원=鄭良謨관장(국립중앙박물관) 安輝濬교수(서울대박물관장) 洪潤植교수(동국대박물관장) 日本 당마사(當麻寺)아스카시대의 중요한 사찰이었던 당마사에는 국보 7점,중요문화재 8점등 많은 문화재가소장돼 있어 사철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국보로 지정된 목조본당건물 오른쪽으로 연실로 만다라를 짰다는 중장희의 상(像)이작은 연못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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