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상의 로봇 이야기] 600만불 사나이의 진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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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35면

30여 년 전의 TV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를 기억하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사고로 눈과 팔, 다리의 기능을 잃은 우주비행사가 첨단 로봇기술의 혜택을 받아 놀라운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된 후 악당을 무찌르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린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 시속 100㎞로 달릴 수 있는 인공다리, 자동차도 번쩍 들어올리는 무쇠 팔, 그리고 엄청나게 먼 거리도 볼 수 있는 인공 눈을 가진 주인공은, 시청자들에게 마치 내가 그런 능력을 갖기라도 한 듯한 대리만족감을 주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600만불의 사나이는 요즘 말로 ‘사이보그’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신체의 일부가 기계로 대치된 인간이나 생물체’라고 정의돼 있다. 당시엔 공상과학영화 또는 미래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로 생각됐지만 최근 이 분야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인공심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있다. 기술의 발전속도로 보아 머지않아 영구적으로 대체 가능한 심장도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로봇기술로 만든 인공수족이 신경과 직접 연결되도록 연구하고 있다. 조만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섬세하고 편리한 인공수족이 널리 사용될 것으로 생각된다. 인공 눈이나 인공 귀 역시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다. 망막 이상으로 시력을 잃은 환자들을 위해 흑백영상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이미 실용화돼 있다.

외화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

상상 속의 꿈들이 현실로 바뀌어 사이보그 인간들이 실제로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기술의 끝은 어디일까. 기계가 인간의 모든 기능을 대치할 수 있을까.

이 분야의 선구적 연구자인 영국 레딩대의 케빈 워윅 교수가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었다. 같이 식사를 하며 그가 생각하는 사이보그 진화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인간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결국 사이보그로 진화할 것으로 보고, 사이보그가 되기를 거부하는 무리는 하류 집단으로 전락해 사이보그들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그리는 미래의 사이보그는 두뇌가 중앙의 컴퓨터와 무선 장치로 연계돼 무한한 정보를 공유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생각만으로도 섹스가 가능하고 영화나 TV 역시 직접 볼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팔에 100개의 전극을 가진 칩을 삽입해 무선 신호로 로봇 손을 작동시키는 생체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는 감정의 교류도 이러한 방식으로 가능하며, 결국 인간 두뇌의 모든 정보를 직접 컴퓨터와 교신하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의 거창한 구상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로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직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인지 과정 자체도 과학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이보그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노력 자체가 창조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그래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생각이며, 이런 사이보그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장애인에게는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심장병이나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는 건강한 삶을 열어줄 기적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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