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까치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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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오(1943~) '까치밥' 전문

열매
다 털리고
푸르던 살과 뼈
차근차근 내어주고

벼랑을 만날 적마다
출렁출렁 일어서던 강

뱃속 껄렁껄렁한
문자 속 다 지우고
서리 내린 이른 아침
눈 비비며 보네

가지마다 저 까만 젖꼭지
어머니 아 어머니!



감나무만큼 우리 민족 정서와 밀착된 나무가 있을까. 어린 시절 감꽃이 피면 꽃그늘 아래서의 술래잡기는 꽃향기만큼이나 마음이 설레곤 했다. 감꽃이 피었다 어디어디 숨을래…. 술래잡기가 끝나면 떨어진 감꽃들을 엮어 팔찌를 만들고 목걸이를 만들고…. 감이 익을 무렵은 일년 중 마을 풍경이 가장 화사하게 보기 좋았다. 단감은 그냥 먹고 떫은 감은 곶감 만들고…. 가지 끝의 열매 몇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다. 불그레 익은 까치밥 덕으로 눈 오는 날에도 마을은 덜 쓸쓸해지고, 까치밥이 다 스러지고 나면 가지에 까만 젖꼭지만 남았다. 마을에 홀로 남은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두 개의 까만 젖꼭지만 남은 어머니처럼….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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