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2월] 초대시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2월도 중순 지나 오늘 햇살 다르다
잠 깨는 무량수전 온종일 낙설소리
풍경이 무색해져서 먼 산만 보는 오후

배 안에 부레를 넣고 떠있는 산 첩첩 사이
세상에 발 못 심은 사람들 떠다닌다
부석은 부석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풍경이 눈 붉어져 뎅그렁 제 몸을 친다
놀란 눈덩이 퍽, 그림자 먼저 떨구고
긴 겨울 어둠에 숨어있던 나도 찾아 떨군다.

<약력>

▶1994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연말 장원▶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조집 '한림정 역에서 잠이 들다'와 5인 시조집 '시인은 다섯 개의 긴 더듬이를 가지고 있다' 등▶현재 '역류' 동인

<시작노트>

죽령 넘어 달려가다보면 거기 부석사가 있다. 떠있다는 돌, 그것은 또 그 부석사에 있다. 나만 떠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돌만 떠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이가 나처럼 돌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부석사로 간다. 거기서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 우리는 그 돌 앞에서 함께 웃는다. 이제 2월도 다 가려한다. 쌓인 곳에 또 쌓여 있던 그 두툼한 눈덩이들은 지금도 녹고 있을 것이다. 그 따뜻했던 풍경도 간간이 울고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