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책] 韓·日 FTA 본격 협상 패배주의부터 극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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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논의가 시작된 지 5년여 만에 이번 주부터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협상을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일본과의 경제.기술적 격차에 대한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다. 안 그래도 대일(對日) 역조가 심각한데 FTA까지 맺게 되면 현재의 기술 격차와 대일 의존이 고착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기업의 3분의 2가 "현재 한국의 기술이 일본보다 뒤진다"(문부과학성 조사)고 보고 있고, 또 한국의 평균 관세율은 8%인데 일본은 2%밖에 되지 않으니 전혀 근거 없는 걱정은 아니다. 지금의 격차가 지속되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일 간 기술 격차의 변화나 FTA로 늘어날 역내시장의 확대 효과를 고려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선 일본 기업의 4분의 3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기술 우위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고, 지난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등록한 특허 건수에서도 일본이 15%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한국도 3%를 차지할 정도였다. 전에 비해 양국 간 기술 격차가 빠르게 줄고 있는 것이다.

기술보다 우리가 더 큰 기대를 걸 만한 게 외국인 투자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그랬다. NAFTA 전에는 캐나다와 멕시코도 '미국 경제에 (자본과 기술에서) 예속된다'는 걱정이 컸다. 그러나 그 협정 이후 외국인 투자가 미국과 캐나다는 세배, 멕시코는 70% 늘어났다.

FTA로 한.일이 하나의 시장으로 엮이고, 또 그것이 언젠가는 한.중.일 FTA로 확대된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늘어나는 외국인 투자는 한국의 기술 발전과 일본(우리의 수출시장)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최근 늘어나는 일본 첨단기술 분야 투자도 FTA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선례와 전망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으로 대일 의존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기미다. 그만큼 일본을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로 여기는 일본에 대한 패배주의가 뿌리깊어서다. 좀더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도 일본을 '동북아경제협력체'나 '동북아 단일시장'을 같이 만들어 가는 상호 의존과 협력의 파트너로 여기기보다 기껏해야 싸워 물리쳐야 하는 상대로밖에 보고 있지 않다.

배타적 대일 경쟁심리는 우리가 대외 관계에서 자주 드러내는 자폐증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이 껍질을 스스로 깨지 않는 한 한.일 FTA를 시발점으로 한국이 동북아의 경제 허브로 나아가는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김정수 중앙일보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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