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문제작가>"고아떤 뺑덕어멈" 김소진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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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90년대 들어 소설은 일정한 흐름이 없어졌다.80년대 위세를떨쳤던 민중문학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중심이 없어졌다.그나마 하나의 조류가 있었다면 노쇠한 민중문학이 「후일담 문학」이라는 형태로 노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것이다.
「후일담문학」은 운동에 가담했던 주변인물들의 회고담으로 80년대의 상처를 쓰다듬고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통과제의란 점에서나름대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그러나 그 자체로는 90년대의 변화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90년대 중반은 80년대 민중문학의 중심 캐릭터였던 도시빈민의 존재가 여전하고 가속화되는 경쟁 속도에 중산층의 생활과 의식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김소진(32)은 90년대 작가로는 거의 유일하게 도시빈민의 삶에서 아직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작가다.91년 등단 이후첫 창작집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솔刊)에서부터 이달말 나란히 선보이는 두번째 창작집 『고아떤(고왔던) 뺑 덕어멈』과 첫장편 『장석조네 사람들』(고려원刊)까지 김씨는 일관되게 도시빈민들의 삶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다.
『어릴때 집안이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어요.어느날 아버지가 도매상에서 소주 20병을 주문했는데 21병이 들어왔어요.소주1병을 놓고 아버지와 설전을 벌이게 됐어요.나는 돌려줘야 한다는 쪽이었고 아버지는 공짠데 말도 안된다는 주장이셨지 요.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됐지만 그 소주 한병의 이미지가 잊혀지지 않아요.』 덤으로 들어온 소주 한병은 김씨 문학의 구심점이다.소주 한병과 도덕을 맞바꾸는 비열함과 그 이면의 소박함.김씨의 소설은 지식인의 정서로 이 빈민적 속성을 껴안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그 과정은 처음에 가족의 공간내에서 아버지의 빈 민적 삶에 대한 거부와 혈육의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시작된다.여기에서는 빈민의 소박함에 대한 이해보다 비열함에 대한 적의가 더강하게 드러난다.『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이 지점에 있다.
그러나 김씨는 곧바로 무기력한 빈민의 삶을 이어가는 아버지의개인사가 거대역사와 겹쳐지는 부분을 발견한다.이후 김씨는 『고아떤 뺑덕어멈』에서는 소주한병의 소박함을 이해하고 『장석조네 사람들』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빈민과 육친의 정을 나누려는데까지나아간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미아리 산동네 장석조네 집에 세들어 사는 도시빈민 아홉가구의 일상을 10개의 이야기로 그려낸 연작소설이다.김씨는 여기에서 양은냄비장수.노가다.전직이발소면도사.분뇨처리인부등 다양한 도시빈민들을 등장시키고 문체도 팔도사투리를비롯한 생활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끊임없이 빈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가까이 가려고 한다.김씨는 『민중적 생활속에서 물욕으로 메마른 90년대에 물기를 제공할수 있는 풍요로운 삶의 원형을 찾아낼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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