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보트피플 속속 錦衣還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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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베트남이 함락되던 75년.9세의 카멜리아 느고는 부모와 두 언니의 품에 안겨 험난한 여정을 떠나야 했다.「보트 피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느고의 가족은 전직 교육부 차관이던 아버지가 청소부로,나머지는 식당잡일을 하며 낯선 땅의 고된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이후 20여년.
해스팅스 법대를 졸업한 느고는 28세의 변호사가 되어 지난달두번째로 그녀가 태어난 베트남의 다낭을 찾았다.
소속 법률회사인 밀러그룹이 맡은 베트남 투자 프로젝트를 처리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억속에만 어렴풋이 남아 있던 고향의 안락함에 푹젖었다. 『내년에 이곳에 집을 마련할 겁니다.그리고 여기에 세워질지사에서 근무하며 평생 살려고 합니다.』미국에서 교육받은 베트남「보트피플」의 자녀들이 산업사회의 지식으로 무장한 채 느고처럼 고국으로 속속 금의환향(錦衣還鄕)하고 있다.
이제 갓 개방에 눈을 뜨기 시작한 고국은 그들에게 무한한 기회의 땅이라는 실리적인 계산과 함께 그동안 나라잃은 국민이라는설움속에서 마음 편하게 살지 못했던 미국의 생활환경보다 동족의따뜻함이 더 안락하다는 감정이 싹텄기 때문이다 .
스위스 화학회사인「시카그룹」의 베트남지사에 파견나온 란 부(27)도『처음엔 이방인처럼 어설펐지만 살수록 정이 든다』며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했고 기앙 트란(30)은「미국 생활이 흔들려서」5년전 귀국,두개의 무역전시장을 운영하는 사업 가로 변신했다. 이처럼 매달 1만여명에 달하는 모국 관광객 중에는 영주(永住)를 결심하고 베트남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는 사업가들과 느고같이 기업의 첨병으로 나선 젊은 인재들이 수두룩하다.그러나 이들에게 고국이 따뜻한 곳만은 아니다.그들에 게는「비에트 키에우」라는 눈살 따가운 별명이 붙어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어려운 시절에 고국을 등졌다 시절이 좋아지니까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라는 뉘앙스다.
거기에다 그들은『뭐가 좋아서 빨갱이들과 일하려 하느냐』는 부모들의 골깊은「레드 콤플렉스」때문에 고민하기도 한다.
〈李元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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