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계획대로 추진하되 과학 비즈니스 벨트로 키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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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무현식 행정도시가 이명박표 과학도시로 바뀐다. 관청을 옮겨 단순히 수도권 기능을 이전하는 도시가 아니라, 특화된 과학 중심지로 자본과 사람을 끌어들여 수도권의 범위를 충청권까지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행복도시를 이제 와서 백지화하기 어려우니 나름대로 보완책을 찾은 결과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최경환 간사는 8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업무보고에서 “행복도시를 복합 자족 기능을 갖춘 도시로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최 간사는 “행정기관이 몇 개 간다고 자족도시가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인수위는 행복도시와 대덕연구단지, 오송·오창 산업단지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육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단순 연구단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 산업을 창출해 내는 과학 비즈니스 도시로 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공사와 행정관청 이전은 기존 계획대로 추진된다. 그러나 개발의 방향은 단일·폐쇄형 도시에서 복합·연계형 도시로 달라진다. 인수위 관계자는 “수도권과 대척하는 개념으로 지방을 발전시키려던 현 정부의 구상과는 다른 수도권의 확충 개념”이라고 말했다.

 또 행복도시가 공주·연기 일원에 국한된 외딴 도시가 아니라 충청권 복합개발의 한 축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공무원 1만 명을 옮겨놓는 데 그친다면 행복도시는 주말에 텅 비는 유령 도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과 사람을 불러들일 핵심 인프라는 기초과학 분야의 첨단장비로 여러 산업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은 ‘중이온 가속기’다. 2006년 해외 정책 탐사에 나섰던 이 당선인이 첫 방문지로 택했던 곳도 중이온 가속기가 설치된 스위스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였다.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시절 강력하게 반대했던 행정수도를 백지화하지 않은 데는 총선을 앞두고 충청권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이 당선인의 충청권 대선 득표율(34~41%)은 전국 득표율(48.7%)을 밑돌았다. 충남에선 이회창 후보에게 겨우 1.1%포인트 앞섰다. 이회창 후보의 텃밭이기도 했지만 ‘이명박이 되면 행복도시도 없다’는 상대 후보들의 공격이 먹혔기 때문이다. 행복도시건설청의 인수위 업무보고도 당초 예정에 없다가 뒤늦게 추가됐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치적 포석을 고민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도시를 그만두기에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이미 단단히 대못질이 돼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공사가 시작됐고, 지난해 말로 토지 보상도 마무리됐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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