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송이 국화 … 이천 화재에 타버린 ‘코리안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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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2000’의 참사엔 중국 동포들의 무너진 ‘코리안 드림’이 있었다.

 8일 이천 시민회관 분향소. 코리아2000 냉동창고 희생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분향소엔 7송이의 국화가 한꺼번에 놓여졌다. 강성문(69)씨와 여동생 강태순(65), 순녀(59)씨 자매가 눈물로 감싼 국화 7송이를 분향대에 올려 놓은 것이다.

 강태순씨는 7일 참사로 아들 조동명(44)씨와 며느리 박정애(44)씨를, 강순녀씨는 남편 박용호(65)씨와 아들 박영식(31)씨를 잃었다. 또 숨진 박영식씨의 처남 김군(26)씨와 고종사촌 손동학(57)씨, 조동명씨의 매형 엄준영(51)씨도 40명의 희생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 강태순씨는 “왜 내가 너를 불러서…”라며 아들의 위패를 끌어안고 몸서리를 쳤다. 중국 동포인 이들 7명의 희생자는 ‘코리안 드림’을 품고 서해를 건너온 일가친척이다.

 강태순씨 자매는 중국 지린(吉林)성 출신으로 2000년 한국에 건너왔다. 강순녀씨는 함께 온 남편 박용호씨와 공사장 등을 전전하며 생활한 끝에 6년 만인 2006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부부는 중국에 있는 아들 영식씨 등 가족과 친척들을 초청하기 시작, 한국에서 일가를 이루게 됐다.

 영식씨는 불이 난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 입사해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곧이어 아버지와 조동명·박정애씨 부부, 처남 김씨, 고종사촌 손씨, 조씨의 매형 엄씨까지 추천해 함께 일하게 했다. 처남 김씨는 2일부터 일을 했다. 근무 시작 6일 만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들의 혈육은 중국에도 있다. 박영식씨는 부인과 지난해 낳은 쌍둥이를, 조동명씨 부부는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중국에 두고 왔다. 강성문씨는 “영식이 가족이 중국에서 뉴스를 보고 너무나 비통해한다. 동명이는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아들은 7월에 대학 입학시험을 보는데 다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통곡했다.

 아들 친구들의 연락을 받고 이천에 도착한 강순녀씨는 “남편,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울부짖었다. 강성문씨도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하루 아침에 우리 집안의 기둥이 모두 뽑혔다”며 침통해했다. 분향소엔 중국 동포 출신 친지 10여 명이 달려와 혈육을 잃은 이들을 위로했다.

 인권단체인 ‘외국인 노동자의 집’과 ‘중국 동포의 집’은 이날 중국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 피해 가족들의 입국과 신원 파악을 돕기 위해 대책위를 구성했다. 김해성 중국 동포의 집 대표는 “한국인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재와 재난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천=이충형·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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