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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참여정부 수고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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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런 거다. 훌륭한 사람은 스스로 내세우지 않아도 빛을 발하게 돼 있고, 훌륭한 정책은 국정홍보처 같은 조악한 확성기를 동원하지 않아도 백성 스스로 편안함을 알아 인정받게 되는 거다. 평소 소신을 접고 현 정권의 386 실세들과 코드를 맞췄다는 평가를 받는 부총리지만 그 한계성 속에서도 경제수장으로서 최선을 다했을 게 분명할 터다. 그렇게 어렵사리 펼쳐온 자신의 정책들이 새 정권에 의해 부인될 때 오히려 새 정권과 코드가 맞을 부총리일지라도 안도감보다 자괴감이 더 클 게 또한 분명할 터다.

그의 직장 상사인 대통령 또한 그럴 거다. 한때 “출근길 버스가 고장 나도 노무현 탓”이라는 식의 유머가 유행했고, 이번 대선에서 온갖 악재 속에서도 적진 후보의 지지율이 꿈적도 않은 ‘노무현 효과’를 목격했지만 그 역시 보수층의 강력한 저항이라는 한계 속에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리 없다.

참여정부 5년에 DJ 정부 5년을 얹어 ‘잃어버린 10년’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에 우연은 없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신은 결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모든 게 있을 만하니까 있었던 거다. 보수세력이 권위주의와 기득권의 못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있었기에 좌파 정권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거다. 지난 5년 내내 계속됐던 “룰 없는 전쟁”을 통해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의 물이 많이 빠지고 기득권의 바닥을 드러낸 것은 잃은 게 아니고 분명 얻은 것이다. 부동산과 교육, 복지, 지역균형, 북핵 정책 역시 내내 삐걱거렸지만 의미 없는 실험만은 아니었다. 어찌 어느 한쪽만 정답일 수 있겠나 말이다. 좌우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부족한 부분을 메워 가는 것이 곧 역사요, 발전인 것이다. 그런데도 탓만 하니 “열심히 봉사하고 팁 못 받은 접객부”처럼 속도 상하고 분하기도 할 터다.

이광이 70여 차례나 나선 전쟁터에서 늘 공만 세운 건 아니었다. 흉노의 대군을 만나 많은 부하를 잃고 생포됐다 탈출한 적도 있었다. 그 죄로 참수형을 받았다가 속죄금을 물고 풀려나기도 했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행군이 늦어 흉노의 퇴로를 열어주었다는 책임 추궁을 당하자 스스로 목을 찔렀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알고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참여정부 역시 그들이 심은 나무에 꽃 피고 열매 열려 그 아래 오솔길이 날지 신작로가 뚫릴지는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동안 수고 많았다. 보좌했던 각료들도 고생 많았다. 그 밑에서 “영혼을 집에 놔두고” 일터로 가야 했던 공무원들도 애 많이 썼다. 나무 심은 이유가 결국 좋은 나라 만들자는 데 있었다면 진인사(盡人事)했으니 이제 조용히 물러가 대천명(待天命)할 일이다. 공무원들은 새 정부에서 다시 국민에 봉사해야 할 테니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 터다. 가능하면 영혼도 몸에 다시 붙들어 맸으면 좋겠다. 참여정부, 정말로 수고 많았다.

이훈범 정치부문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