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후의북한을가다>좌담회-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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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康仁德소장=우선 李국장의 목숨을 내건 기자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그동안 전언 형식으로만 전해지던 북한 지방주민들의 생활상을 내발로 걸으며 직접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中央日報에 연재된 「동토기행」은 큰 의미를 지녔다 하겠습니다.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李讚三국장=이번 북한 잠행 시리즈는 북한 전문가가 아닌 사회부기자의 입장에서 북한사회의 속을 들여다 보려는 시도였습니다.그런데 연재를 마치면서 제자신이 가장 놀라는 것은 연재된 북한 기사내용이 사실 새삼스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 고 국내외에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솔직히 말해 「북한이 못산다」는 얘기는 그동안 우리가 귀순자들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온 내용으로 어느정도 식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康소장=그게 큰 문제입니다.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나 전문가들이 북한실상을 아무리 얘기하더라도 냉전적 사고라고 몰아붙이고 믿지않는 불신 풍조가 팽배해 있어요.우리 지식인들과 언론도 북한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만 갖고있는 실정입니 다.그런데 이번에 李국장이 그것도 잠행취재를 통해 북한 실상을 생생히 보도하니까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朴英圭실장=전문가 입장에서도 이번 보도는 상당히 유익했다고봅니다.우선 우리가 갖고 있는 북한 정보가 이번 보도를 통해 재확인 됐습니다.특히 지금까지 대부분의 방북자들이 평양만 보거나 또 제한된 코스만 방문한 반면 李국장은 평양 은 물론 북한전역을 누비면서 취재함으로써 그같은 한계를 극복했다고 봅니다.
▲李국장=AP.로이터등은 물론 일일이 꼽을 수도없을 정도로 많은 해외 언론매체들이 이번 연재를 계기로 접촉해오고 있습니다.그런데 이들과 접촉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개중에는 북한에 대해아주 초보적인 질문이 포함돼있다는 것입니다.이같 은 것을 보면서 저는 우리가 북한 정보를 너무 귀담아 듣지않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또 엊그제는 제 숙소에 운동권 학생들이 찾아와 저에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이들은 제가 中央日報와 KBS가 보도한 것을 보고 북한 실상을 제대로 알게됐다고 하더군요.또 어떤 학생은 앞으로는 데모를 안하겠다고 하기도 하고요.이런 것을 보면서 통일이 되어도 남북간의 두터운 인식의 벽을 어떻게 허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康소장=북한의 비참한 식량 상황은 이번 연재에서 생생히 확인됐습니다.저는 북의 식량사정이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으로 봐요.북한은 최근 기존 농장을 국영 농장으로 전환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이는 한마디로 수확한 농산물을 깡그리 징 발하겠다는 것입니다.
▲李국장=북한 농촌과 지방은 「더이상 나빠질 수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나쁘더군요.반면에 평양의 사정은 이전에 비해 약 30%정도 향상됐어요.저는 이같은 현상의 배후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봅니다.즉 김일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카리스마가 부족한 김정일로서는 지역적으로는 평양과 「생활을 찾아준 지도자 동지」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康소장=저는 14일자 中央日報에 소개된 엉거주춤한 자세의 북한 군인 사진을 인상깊게 봤습니다.우리는 흔히 북한군이 사상무장이 잘돼있고 전투의식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북한군은 건설현장에 동원되는 노동군에 가깝습니다.북한 에도 사람 사는 곳에서 생기는 일은 다 생긴다고 보면 북한군의 전투의식은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높지않을 가능성이 많아요.
▲朴실장=저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북한사회의 부정.부패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심화되는 것은 물론 주민 통제가 점차 이완되고 있다는 점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또 개인주의와 암시장이 확대되는등 북한 주민들의 일탈 행위도 점차 늘고 있다는 것도 재확인했고요.최근 김정일은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내용의 논문을 통해 사상 통제를 강조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북한사회가 점차 통제불능의 상태로 흘러간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李국장=기자 입장에서 이번 취재에서 가장 염려했던 것은 이같은 식의 기사가 자칫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지않을까하는 점이었어요.많은 분들이 저에게 『북한은 장점이 하나도 없는 사회냐』하고 물어오셨습니다.제가 보기에는 북한 사회의 장점으로 두가지를 꼽을 수있을 것 같습니다.하나는 외부인 또는 어른들에 대해 북한 어린이들이 상당히 예의가 바르다는 대목입니다.둘째는 교육이에요.북한의 교장.교원은 한번 부임하면 10년이고 20년이고 한곳에서만 근무합니다.한곳에 오 래 근무하다보니 부모는 물론 학생의 형제.자매 인적사항과 성격등을 환히 꿰는 장점이 있죠. ▲康소장=이번 기사는 북한 실상을 정확히 알게함으로써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합니다.그동안 우리가 주장해온 「햇볕론」「북풍론」같은 정책 기조도 사실 북한 주민의 구체적인 정서와 현실에 입각해 수립한 전략이라고 보기 힘듭 니다.
지금부터라도 북한 주민과 지배층을 전반적으로 고려,통일 앞당기기 운동같은 종합적인 대북 전략을 새로 짜야합니다.한편 북한의권력승계 문제는 주민들이 「김정일이 나와서 생활이 나아졌다」고생각할 때까지 최대한 늦출 것으로 보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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