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선물시장 개설 대비책-4월 모의거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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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96년 주가지수선물시장의 개설에 앞서 증권거래소는 금년 4월부터 연말까지 3단계에 걸쳐 모의선물거래를 실시한다.아직도 선물이 업계 일부에서는 마치 일확천금할 수 있는 기회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면이 있다.작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선물거래의 문제점과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시장이 기반을 잡기 위해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금세기 금융시장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구조변화들중 하나는 80년대초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온 금융파생상품(Derivatives)의 등장이다.파생상품은 주식.채권.외환과 같은 일반적인금융자산의「가격움직임」을 상품화함으로써 기업의 위험관리에 새로운 장(章)을 열었다.가령 환율의 변동 때문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외화자산의 손실을 방지하거나 채권에 대한 변동 이자율을 고정이자율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금융자산의 움직임이 클때는 상품의 속성상 이를 더욱 증폭시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실물이 뒷받침되는 거래는 큰 문제가 없으나 반대거래없이 단기매매차익을 노리는 투기 목적의 거래는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금융상품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실에서 이러한 초과수익률에 대한 유혹은 끊이지 않는다.그러다 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郡)의 파산보호신청(박스참조)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지난 회계연도 결산(6월) 에서 1억달러를 스와프거래로 날렸다고 보고했던 프록터 갬블(「아이보리」비누로 유명)社는 10월말에 이 거래를 중개했던 뱅커스 트러스트 은행을 걸어손실을 보상하라고 제소했다.파생상품을 많이 팔았던 은행.증권회사들은 이 불똥이 자기들 에게도 튀어올까봐 재판의 진행을 초조히 지켜보고 있다.
92년까지만 해도 파생상품으로 인한 손실은 미미했으나 93년부터 총거래규모의 증가와 함께 갑작스럽게 늘어나 작년 10월 현재 공식적으로 확인된 손실만도 60억달러에 이르렀다.
그러자 각국의 규제움직임도 활발해져 국제결제은행(BIS)은 물론 각국의 규제기관이나 중앙은행들은 잇따라 보고서를 내놓았고웬만한 증권.금융관계 국제회의에는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파생상품의 이용이 위험을 수반한다고 해서 환율.이자율등이 급격히 움직이는 현실에 그냥 내맡길 수 없다는입장이다.가령 멕시코 페소貨의 가치가 폭락해 국제금융.증권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져도 속수무책으로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따라서 파생상품 그 자체의 효용을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규제하기 보다 거래를 어떻게 하면 잘 감독해 통제 가능한 범위내에두느냐 하는 것으로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즉 위험관리의 성공 여부는 궁극적으로 위험에 민감한 기업문화.조직 풍토에 귀착한다. 우리나라의 은행.증권회사.투신.종합상사들도 미래의 주가.이자율.환율.원자재가격동향에 따라 부담해야 할 위험을 최소한주1회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증권회사들이 전통적으로 해온 주식중개업에서 얻는 수입은 기술혁신과 경쟁으로 인해 계속 감소해 왔다.전산화에 따른 경비지출은 심하고 지난 몇년간의 호황으로 인원은 늘어나 마진은 줄어드는데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약정경쟁에서 헤어날줄 모르는 우리 증권사들에 96년에 시작될주가지수선물은 분명히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시카고에는 파견또는 연수나온 한국의 증권.은행.투신.단자사 직원들이 최소한 1백여명 있다.그것도 그냥 간 것이 아니라 총 8천만달러에 달하는 펀드들을 만들어 관리보수와 매매수수료를 지불하고 펀드의 손실까지 감수하면서 매매기법을 한가지라도 더 배우려고 안간힘쓰고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층이 파생상품의 효용과 위험이라는 양면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자칫 큰돈을 벌수 있는 수단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새로 시작할 선물거래에는 많은 어려움과 혼란이 따를 것이다.
지난 12월 도쿄에서 열린 국제파생상품펀드관리자회의에서 만난참석자들에게서 느낀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은 한마디로 대단한 것이었다.문제는 이들의 관심을 우리 선물시장이 튼튼히 뿌리내리는데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적절한 수준의 규제와감독이 필요하겠지만 정부가 국부의 유출이나 시장 질서등에 지나치게 집착해 규제 일변도로 나선다면 결과는 뻔하다.부처간 주도권싸움으로 차일피일하던 상품.금융선물거래소가 지난해 기획원.재무부의 통합으로 단일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문제는 우리 시장이 투자자들의 계속적인 관심을 끌만큼 유동성(즉 거래량)을 확보할 것인가다.국제금융시장으로 성장하기 위해이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요건이고 이것은 다시 외국인 투자자들의 참여없이는 불가능하 다.
가령 선물거래의 종주국 미국을 보자.10년전 세계 총선물거래의 95%가 미국에서 이루어졌으나 이것도 옛말.92년에 54%,93년 50%,94년은 9월까지 46%에 불과해 미국의 우위는 끝난 듯하다.미국밖 파생상품시장의 금년 성장률 은 55%인데 반해 미국시장의 성장률은 고작 28%여서 이런 추세라면 미국시장의 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세계 제일을 다투는 시카고의 두 거래소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시카고선물거래소(CBOT)가 주도권다툼(표참조)으로 사사건건 싸우는 동안 다른 거래소들은 신상품과 기술을마음대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같은 시간대의 도쿄,1시간차에 있는 홍콩과 한판승부를 염두에 둔다면 싱가포르처럼 과감한 개방,국제시장과의 실질적인 통합등 획기적인 발상이 요구된다.
權成哲〈금융증권전문위원.經營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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