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산책>풍운일으킨 여성기사 豊雲 7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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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한국 바둑팬들에게 아직은 낯선 중국의 여성기사 펑원(豊雲)7단이「제1회 보해컵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이름과 한국어발음이 같은 풍운(風雲)을 일으켜 화제다.4강이 겨루는 준결승에서 난적(難敵)양후이(楊暉)8단을 꺾고 대망( 待望)의 결승에 진출한 것.
컴퓨터프로그래머인 남편과 함께 베이징(北京)에 거주하는(중국에선 선택받은 사람만 베이징에 살 수 있으므로 그 자체만으로도의미가 크다)만 29세의 豊7단은 유럽바둑계 쪽에는 잘 알려진인물이다.여러차례에 걸쳐 바둑사절단의 일원으로 유럽을 순회하며벽안(碧眼)의 애기가(愛棋家)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한편 차오다위안(曹大元)9단의 부인으로 녜웨이핑(섭衛平)9단-공샹밍(孔祥明)8단 커플에 이어 두번째 부부기사(夫婦棋士)탄생을 기록한 楊8단(만32세)은 결승진출이 무산되자 크게 낙담한 모습.
과거의 여성1인자 孔8단이 섭9단과 이혼하고 일본으로 떠났으며,제2기 잉창치배(應昌期盃)4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한 마녀(魔女)루이나이웨이(芮乃偉.만32세)9단도 해외에서 활약중이므로 楊8단은 실질적으로 국내 1인자의 위치다.
「떠오르는 별」豊7단은 楊8단에 이은 제2인자.두 사람은 새로운 라이벌 관계를 이루며 평소 엇비슷한 전적을 기록해왔으나 楊8단쪽이 큰 승부에 강한 것으로 평가 받던 터에 정작 큰 승부인 보해컵 준결승에서 일격을 당했으니 충격이 더 욱 클밖에.
기력(棋力)향상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작년봄 4층에서 뛰어내려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던 楊8단.『그러고나서 오히려 바둑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으며 각종 대회에서순항(順航)하던 楊8단이 이번 충격으로 다시 뛰 어내릴까 걱정된다.제발 그런 일이 없어야 할텐데….
楊8단은 자신의 위치에서 오는 사명감과 강박관념으로 스트레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芮9단은 중국을 떠날때 중앙정부의 허락없이 상하이(上海)에서일본으로 빠져나간데다 중국바둑협회의 소환명령에도 불응함으로써 단단히 미움을 샀다.그러나 그 뛰어난 기량으로 중국을 빛내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어 슬그머니 중국왕래를 허용했을 망정 여전히 속이 편치못한 상태다.
따라서 중국바둑계로서는 芮9단보다 더 강한 여성기사를 배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다보니 대표주자인 楊8단의 심적 고통과 갈등이 누구보다 극심했던 모양이다.
또 한판의 준결승에선 중국대표로 나온 芮9단이 일본의 가토 도모코(加藤朋子)4단을 가볍게 셧 아웃시키고 결승에 올랐다.가토4단은 일본 여류혼인보(女流本因坊)타이틀에 빛나는 강자지만 芮9단의 적수(敵手)가 되기엔 미흡했다.
그런데 부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응원하던 장주주(江鑄久)9단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비자 재발급 문제로 미국에 갔기때문이라고 한다.
준결승은 광주시의 신양파크호텔에서 열렸다.전통적 예향(藝鄕)으로 유명한 광주는 김인(金寅)9단.조훈현(曺薰鉉)9단.김재구(金在九)7단.고재희(高在熙)7단등 10여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한 고장답게 바둑팬도 많고 그 수준도 높은 곳이다 .
무등산을 둘러본 중국과 일본기사들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뜻의 『헌 메이리』『혼도니 기레이』를 연발하며 그 수려한 자태에 넋을 잃었다.
芮9단과 豊7단의 결승3번승부는 오는 23,24,25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열릴 예정이며 우승상금은 3만달러,준우승 상금은 7천달러.
〈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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