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곡물가·유가 상승 직격탄 맞은 중국 음식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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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IMF 외환위기 때가 나았어요.”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서 12년째 중국집을 운영해온 양영근(53)씨는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자장면의 주재료인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적인 곡물가격과 유가 상승의 불똥이 자장면에까지 튄 탓이다.

“이참에 기름을 빼고 요리를 만들어 보든지, 무슨 수를 내야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요새 웰빙이니 뭐니 해서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데….”

양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식용유 18ℓ 한 통이 석 달 만에 2만5000원에서 2만8000원으로 3000원가량 올랐다. 밀가루 값은 최근 석 달 새 63%나 뛰었다. 지난해 10월에 20㎏ 한 포당 1만6000원이던 밀가루 납품 가격이 이 달 들어 2만6000원으로 급등한 것이다. 중국음식 업계에서는 1월 중 밀가루 가격이 20% 추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씨는 “자장면 한 그릇당 30% 정도를 차지하던 재료비 비율이 이제는 40~45%까지 커졌다”며 “인건비에 임대료·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마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밀가루 값 석 달 새 63% 뛰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씨는 궁여지책으로 자장면 가격을 올릴지 말지 고민 중이다. 섣불리 가격을 올렸다가 매출만 줄어들까 두렵기만 하다. 양씨는 “가격을 올려야 그나마 수지가 맞는데, 가게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주일만 먼저 올려도 다른 집에 손님들을 다 빼앗길 텐데 그런 손해를 어떻게 감수하겠느냐”고 했다.

전국 2만여 개에 달하는 다른 중국 음식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48·여)씨는 “지금도 간신히 버티는데 가격을 인상했다가 매출이 줄어들면 그야말로 적자다. 그럼 결국 망하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고객이탈을 감수하고 자장면 값을 인상하는 중국 음식점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중국집을 운영 중인 김모(51·여)씨는 새해부터 자장면 값을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했다. 김씨는 “그동안 인건비를 줄여 음식 값 인상을 자제해 왔지만, 재료 값 폭등에는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울산시 남구의 H반점도 자장면과 짬뽕·만두 가격을 500원씩 올릴 계획이다.

식용유 값도 고공행진

삼성경제연구소의 곽수종 박사는 “곡물과 유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1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밀가루 가격 상승은 유럽·호주의 밀 생산량이 급감한 데다 최대 생산국인 미국의 밀 재고량이 23년 만에 최저로 나타나면서 국제 원맥 가격이 폭등한 데 따른 것이다. 주요 밀가루 수입업체인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유가 급등으로 크게 오른 해상 운임까지 밀가루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민음식’의 물가 추이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로 꼽히는 자장면 평균 가격은 1977년 200원에서 2007년 11월 말 현재 3364원으로 올랐다. 97년 당시 평균 2253원이던 자장면 값은 외환위기에 따른 환율 급등으로 1년 만에 350원이나 껑충 뛰기도 했다. 이번 재료비 급등은 또 한 차례 큰 폭의 가격 인상을 예고하는 것이다. 더욱이 밀가루 값 상승의 파장은 자장면에서 그치지 않고 라면과 제빵, 과자 등 식품업계로 확산될 것이란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김효혜 인턴기자 rub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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