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에게 영혼을 돌려주라” 전직 공무원의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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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영혼이 없다.”

지난 3일 국정홍보처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한 고위공무원이 인수위원들의 계속된 ‘질책’에 이같이 하소연했다.

국정홍보처는 지난 5년 ‘정권 홍보’와 취재선진화를 명목으로 한 ‘기자실 폐쇄’ 등에 앞장서면서 차기 정부에서 ‘폐지’가 확실시되는 부처다.

그런데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한 고위 공무원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공무원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고 있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관료는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변명했지만, 노무현 정부 아래서의 지난 5년간의 ‘기개’는 찾아볼 수 없었다.

25년간 공직에 있었다는 한 전직 공무원은 자신의 공직 경험을 상기시키며 “차기 정부는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사회교육 강사와 기행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노희상 씨는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혼이 없다'면 국민은 귀신을 믿고 일을 맡겼다는 말인가”라며 “'×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라'는 60, 70년대 군대문화의 폐풍이 공무원세계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일”이라고 개탄했다.

노씨는 “14년 군대생활이야 명령에 살고 죽는 곳이라 할 말이 없지만, 그 뒤 11년 공직생활은 정말 끔찍했다”면서 “도대체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나'라는 삶의 주체는 챙길 수가 없었다”고 공직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비효율 비능률적인 업무처리, 상관 비위맞추기, 예산 적당히 돌려쓰기, 인사철이면 공적조서는 한낮 휴지에 불과할 뿐 번번이 나타나는 코드 승진들…”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노씨는 이어 “나는 11년 동안 한 직위에 머물렀다. 돈 안 쓰고 일만 한 결과는 뼈 빠지게 일만 할 뿐, 나에게는 승진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면서 “정치권에 나가 2년 여 동안 일하면서 더 큰 모멸과 당혹감을 맛보았다. 아니, 정말 쓴맛을 보았다”고 공직사회의 부조리를 언급했다.

그는 또 “수많은 연줄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심지어 시골 분들까지도 여기에 가세하여 나의 혼을 갉아 먹으며 즐거워했다”고 뼛속까지 침투한 우리 사회의 연줄 문화를 적시했다.

노씨는 “그래서 나는 공직을 떠났다.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배가 좀 고프고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대접이 시원찮더라도 내 맘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며 살고 싶었다”면서 “드디어 나는 불혹의 후반에 공직을 털고 나왔다. '가만있으면 정년퇴직으로 연금까지 보장될 텐 왜 찬바람 부는 거리로 나가느냐'고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자유가 그리웠다. 47세에 새장 밖으로 나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내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공직을 떠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치자계층”이라며 “직업공무원제도가 정착되었다고 우쭐대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해보는 소리다. 제대로 된 공무원의식성향 여론조사 한번 해보라. 아마 7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더러워도 참고 산다'고 할 것”이라고 공무원들의 솔직한 심정을 대변했다.

노씨는 “그렇다고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자세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며 “제대로 된 사람을 뽑고, 제대로 대우하고, 제발 언로를 열고 토론으로 국사를 논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씨는 그러면서 “공무원사회에 들어가 보면 언로는 닫혀있다. 아니 얼어있다. 윗분들의 의도대로 짜 맞추고 꿰맞추는데 이골이 나도록 훈련만 시킬 뿐이다. 이런 공직자들이 변화혁신의 주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고 “'공무원들에게 제 영혼을 돌려주라'-이것이 신 정부가 해야 할 공무원개혁의 제1조”라고 애정 섞인 고언을 했다. [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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