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표 환전해 태안 자원봉사자에 장갑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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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 우표를 돈으로 바꿔 태안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장갑을 보내주세요.”

 4일 중앙일보에 이러한 주문이 담긴 편지가 배달됐다. 봉투 속에는 1750원짜리 우표 30장(총 5만2500원 상당·사진)이 들어 있었다. 보낸 이는 편지에 ‘재소자’라고 신분을 밝혔다. 겉봉에는 사서함 번호와 이름만 적혀 있었다.

 본지가 법무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발신자는 S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이모(40)씨였다. 그는 도난 차량을 몽골에 밀수출한 혐의(관세법 위반)로 기소돼 1심에서 2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이씨는 두 장으로 된 편지에 “원유 유출 사건으로 아름다운 태안반도가 황폐화된 것을 보고 씁쓸한 기분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적었다. “재소자의 몸이 아니었다면 당장 달려가 지역주민과 자원봉사자 틈에 끼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잠깐의 실수와 어리석음으로 법을 위반해 사회와 격리돼 있기에 타르가 잔뜩 묻어 있는 자갈 하나도 닦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표를 보낸 것에 대해 “재소자는 현금을 취급할 수 없어 우표를 사서 보낸다”며 “우표는 우체국에서 현금으로 바꿔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우표를 구입한 돈은 “어머니가 못난 자식이 배고플까봐 빵이라도 사먹으라고 넣어준 영치금”이라고 했다.

 이씨는 “태안 지역은 아내와 아이들과 자주 여행을 다닌 곳이라 마음이 더욱 아프다”고 썼다. 그리고 “하루빨리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생활하는 분들의 시름과 걱정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본지는 이씨가 보내온 우표를 태안 원유 유출 사건의 복구·지원 기금을 모금하는 재해구호협회(전화 1544-9595)에 전달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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