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차한잔] “해외 유출 문화재 우리가 재평가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문화재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7만4000여점에 달한다지요. ‘반환’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그 유물 하나하나를 돌아보고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재발굴 해내는 작업이 필요할 때입니다.”
 
해외 소장 불교회화 20점에 대한 감상기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부엔리브로)를 펴낸 미술 사학자 강소연(38)씨는 “목록 상에 한 줄로 남아있는 작품들에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지 알아야 잃어버린 우리의 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찾아 다녔다. 불교회화사를 전공한 그가 국내 작품만 갖고는 통사적인 연구를 하기 불가능해서였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불교회화 문화재는 조선후기 작품에 집중돼 있어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작품은 통틀어 10점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일본과 영미권 국가에서는 고려와 조선 전기의 불교 회화를 250여 점이나 소장하고 있답니다.”
 
이를 두고 그는 “우리 역사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까지 말했다. 유출 경로는 여러가지로 추정된다. 고려 말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판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일본으로 유출됐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주장은 ‘선물 받았다’는 거지요. 그리고 일본 메이지 시대 이후일본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미국과 영국의 박물관으로 또 넘겨졌습니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우리 문화재를 찾아갔을 때 그는 ‘우리 것’이란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형식이나 양식의 고증을 넘어 가슴을 파고드는 우리 자신의 것에 대한 본능적인 직감”이라는 것이다.

2001년 일본 교토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고베 시립박물관의 한 학예관에게 연락이 왔다. 어느 개인 소장가가 기탁한 작품이 일본 가마쿠라시대 것으로 분류돼 있는데 아무래도 한국 불화로 보인다는 제보였다. 촬영 채비를 갖춰 한걸음에 달려갔다. 세로 196㎝, 가로 133㎝인 대형 불화 ‘비로자나불도’였다. 주존불을 중심으로보살·십대제자·사천왕 등이 앉아있고, 주변에는 엄지 손톱크기 만한 부처가 무려 8000여구나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무수히 많은 부처들의 얼굴표정이 모두 가지각색이지 않은가. 호호 웃고 있는 부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부처, 고개를 갸웃거리고있는 부처…. 초미니 부처들의 얼굴에는 장난기마저 감돌았다.

“우리나라 특유의 해학과 유머지요. 엄숙한 종교 작품에 이렇게 밝고 우스꽝스러운표정을 집어넣는 건 한·중·일 3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거든요.”
 책에는 그가 직접 찍은 사진 200여 컷을 함께 실었다. “실물조사를 통해서만 포착할 수 있는 작품 속의 명장면과 디테일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장비도 만만치 않고 때로는 사진이 잘못 나와 다시 가기도 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단다.

“일본에서 유물조사 허락을 받으려면 평균 3개월은 걸리죠. 제가 유물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는 서너 시간 동안 담당자는 옆에서 꼼짝 않고 감독을 하고요.”
 
그가 도록을 얻어 쓰지 않고 사진을 직접 찍는 데는 그의 아버지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국립경주박물관장)의 영향이 크다.

“반드시 사진은 직접 찍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유물과의 교감’을 위해서라고하셨죠.”
 
현재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으로 일하며 홍익대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재와 중국·일본 문화재를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 작품만의 정체성을 찾아보려 한다” 는 포부를 밝혔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