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주먹 켄 노턴 아들 NFL 대스타로 키워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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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프로복싱 前세계헤비급 챔피언 켄 노턴(50)이 아들을 미국프로풋볼(NFL) 스타로 키워내 그들 부자의 이야기가 미국 프로풋볼리그 플레이오프 4강전(16일)을 앞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프로풋볼 라인베커로서의 확고부동한 입지를 구축한 노턴2세(29)는 UCLA와 슈퍼보울 3연패를 노리는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거쳐 현소속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주전 수비수로 성장하기까지 프로복서출신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받았다.
수비수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지만 먹이를 발견하면 절대 놓치지 않는 매처럼 상대팀 공격수를 단숨에 거꾸러뜨리는 정확한태클과 11초대를 돌파하는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다.그는 플레이오프나 슈퍼보울등 큰 경기에 출 전하기만 하면진가를 발휘,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한다.
지난 93년 카우보이스가 슈퍼보울을 거머쥘 당시 그는 10개의 태클을 이끌어내면서 상대인 버펄로 빌스의 쿼터백 짐 켈리를덮쳐 무릎골절 상태로 만들어 경기장 밖으로 밀어냈다.뿐만 아니라 펌볼을 낚아채 터치다운까지 성공시켜 일약 대 스타의 반열에올랐다. 지난해초 카우보이스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그는 이같은 현란한 플레이로 인해 9백60만달러(약 76억8천만원)의 거액을 받고 올해부터 포티나이너스로 이적,부와 명성을 한꺼번에누리는 행운의 사나이가 됐다.
과거에는 「알리의 턱뼈를 부숴버린 핵주먹 켄 노턴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으나 이제는 스스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셈이다. 아들을 향한 끝없는 부정(父情)은 28년전인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노턴은 아내와 이혼,생후 14개월된 아들을 혼자 길러야 했다.노턴의 직업은 포드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잡역부.젖먹이 아들을 양육하랴,일감을 찾으랴 노턴의 하루는 고달프기만했다.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그가 복싱에 입문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고달픈 생활에 일확천금하고 싶은 욕망과 아들을 구김살없이 키우고 싶은 애틋한 부정이 그를 복싱계로 이끈 것이다.
막상 복싱에 입문했으나 그의 일상은 지루하면서도 반복적인 일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노턴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1972년 11월 네바다주 스테이트라인에서 무하마드 알리-보브 포스터의 헤비급타이틀매치 전초전에 출전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 경기에서 노턴의 한맺힌 주먹은 헨리 클라크를 녹다운시켜 버렸다.
이 경기가 있은지 꼭 4개월후인 73년 3월 노턴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대전료 5만달러를 받고 복싱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펼친다.알리의 지명방어 상대로 나섰다가 왼손훅을 알리의 턱에 명중시켜 통쾌한 승리를 낚았던 것.그의 꿈은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이날의 승리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노턴은 78년 래리 홈스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후 은퇴할때까지 내로라하는 주먹들과 빅이벤트를 벌이며 당대 최고의 복서로 군림했다.
그런 와중에도 노턴은 아들의 양육에 신경을 썼다. 자전거,스케이트보드,질좋은 운동화등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아낌없이돈을 쏟아부었다.
노턴2세가 고교2년때 라인베커로 풋볼을 시작한것도 아들의 희망을 꺾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배려때문이었다. 노턴은 대학때부터프로에 입문한 요즘까지 아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현장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빈궁한 생활에서 벗어난 노턴은 86년 2월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는 아직도 실어증세와 반신불수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당시 노턴2세는 아버지 치료에 심혈을 기울여 이들 부자의 이야기는 전 미국인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노턴 부자의 행적을 두고 역경을 딛고 일어선인간승리의 산증인이라며 오래 오래 기억되길 원한다.
최근 노턴2세가 딸을둔 백인 안젤라 파이크를 아내로 맞이해 부자간 불화의 씨를 남겼으나 차가운 핫도그를 먹던 지난날의 기 억이 이들 부자의 끈끈한 정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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