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예술은 시장의 하수인 … 무명화가? 내가 띄워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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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 그림은 왜 비쌀까
피로시카 도시 지음, 김정근 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18쪽, 1만3000원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오른 미술시장에 대한 통렬한 야유다. 미술품의 가치와 가격은 다르며 천정부지로 치솟는 그림값은 미술가· 화상(畵商)· 평론가· 언론인은 물론 수집가까지 참여한 짬짜미 탓이란다. 국제시장 이야기지만 설득력 있다.

우선 미술가들. 르네상스 이후 자본주의가 싹 트면서 주문을 받아 생산되던 ‘미술품’은 ‘상품’이 되었다. 미술가들은 발주자의 기호 대신 시장의 취향에 봉사하기에 이르렀다. 보헤미안이 아니라 사업가를 택한 것이다. “훌륭한 사업이 훌륭한 예술이다”라고 갈파한 미국의 현대미술가 앤디 워홀은 ‘공장’을 차렸을 정도다. 피카소는 1918년 화상 폴 로젠버그·조르주 발덴슈타인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들의 지원에 힘입어 1939년 뉴욕 회고전을 계기로 세계 미술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화상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무명 화가의 작품을 선점하고, 그 작품들을 쟁여 놓은 채 작가를 띄우는 등 그림값에 거품을 불어넣는다. 뿐만 아니다.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사는 2000년 불법 가격담합 협의로 미 법무부에 의해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미술품 상품화를 선도하는 주역 중 하나인 크리스티의 그림 경매 모습.

수집가들도 한몫했다. 영국의 광고계의 거물 찰스 사치는 1990년 썩은 암소머리와 파리떼를 유리상자에 담은 대미언 허스트의 실험적 작품 ‘천년’을 샀다. 이를 계기로 허스트의 동문들을 후원해 ‘젊은 영국 미술가들’ 그룹을 키워 미술계의 큰 손으로 등장했다. 결국 2000년 그들의 작품값은 3분의 1로 떨어지며 조용히 과대선전된 무대를 떠났지만.
 
이와 함께 미술품가격의 지수로 많이 사용되는 ‘메이모제스 지수’도 구멍이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에선 유명한 미술관마저 거액 기증 약속에 무명화가의 ‘작품’을 기꺼이 전시하겠다(미술관 컬렉션에 들어간 작가의 작품은 값이 뛴다)고 나선 사례를 소개하며 미술품 가격의 거품 가능성을 지적한다.

지은이는 결국 미술품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는 수집가가 되지 말고 애호가가 되는 편이 낫다고 충고한다. 미술시장에서 열리는 ‘파티’는 분화구 위에서 추는 춤과 같다며.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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