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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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2부 불타는 땅 봄날의 달빛(13) 천장과 맞붙다시피 높게뚫려 있는 작은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지하실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누가 그랬었나.감방에 있을 때는 쥐라도 한마리 있으면 그게 다 친구가 된다고.
벽에 등을 기대고 너부러진 채 화순은 그 햇빛을 멀거니 바라본다. 그래도 저건 햇빛인데… 어디 저걸 쥐에다 비할까.마치 무슨 손님같구나.
왜 왔니? 넌.무슨 소식이라도 있는 거니? 힘없는 눈으로 화순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줌의 햇빛에게 물었다.얻어맞으면서 입안이 헤지고 턱이 부어올라 그녀는 혀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가늘게 뜬 그녀의 눈가에 언뜻 웃음같은 것이 스미듯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렇구나.내일이면 열흘이다.그믐에 떠났었는데,아 그랬어… 어제는 달이 꽤 밝았어.그 남자가 떠난지 열흘이야.그렇다면 산 거 아닌가.잡혀오지도 않았고 어디서 맞아 죽었다는 소문도 없다.그래.그 남자는 해낸 거야.내 남자.내 귀한 남 자.
이제 뭐가 무섭겠어,내가.
검은 머리 자라서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았고,나도 사람노릇 한건데,이제 더 뭘 바라겠어.그렇겠지.죽이지만 않으면 살 테지.
살아서 볼 날을,만날 날을 기다려야겠지.기다릴 게 있다는게 날버텨 주겠지.
두 다리를 뻗고 등을 벽에 기댄 화순이 입가에 잠깐 웃음을 떠올렸다.
옷은 젖가슴의 골이 드러나게 찢겨 있었고 핏자국으로 얼룩진 치마는 흙투성이였다.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피딱지와 함께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다.한쪽 볼이 부어오르며 일그러진 얼굴은 피멍으로가득했다.아무렇게나 치켜 올라가 있는 치마 속으 로 마치 얼룩무늬가 지듯이 회초리 자국이 넓적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꿈지럭거리며 몸을 움직인 화순이 문가로 기듯이 다가가 두 손으로 쇠문을 두드렸다.밖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꿈틀거리듯 몸을 돌린 화순이 이번에는 다리를 들어 발뒤꿈치로 문을 걷어찼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또 왜 시끄럽게 구냐.』 『오줌은 눠야 할 거 아냐.』 『야 이년아,또 싸? 이년 오줌통은 곱뿌로 만들었나.처먹은 것도없는 년이 자주도 싸겠다네.거기 아무데나 싸 버려,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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