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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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봄날의 달빛(12)그때였다.종길이 활처럼 휜 몸을 천천히 폈다.오른쪽 팔목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그는 하세가와를 올려다보았다.입술이 떨리고,부릅뜬 눈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육지로 갔겠지!』 종길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언 놈이 아무려면 뒈지려구 망망 바다로 기어나갔겠냐!』 『무슨 소리냐?』 하세가와의 말에 박씨가 대답했다.
『모른답니다.』 여전히 하세가와를 노려본 채 종길이 말했다.
『시모노세낀지 뭔 새낀지,거기 가서 조선 가는 배를 탄다구 허더라구 전허슈.그거야 조선놈이면 누구나 허는 생각이니께.아는게 있어야 말이라도 맹글지.쥑이든 살리든 지 마음대로 허라지.
』 목뼈가 부러지듯 종길이 고개를 꺾었다.
하세가와가 말없이 종길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끌어가라.그놈은 독방이다.』 나카무라가 종길의 팔밑에 손을넣으며 하세가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지하실에 있는 독방은 다 찼는데요.』 『갈보년 방에 처넣어.그럼,오후에 그년을 한번 더 족칠거니까.』 박씨와 나카무라에게 두 팔을 잡힌 채 끌려가는 종길의 악쓰는 소리를 하세가와는미동도 않고 앉아서 듣고 있었다.
『그래,이눔아.내가 알었으면 나도 갔을 거다.몰라서 못간 게한이지 간 놈들 어디로 갔는지,내가 다 알았다헌들 말을 헐 리가 없다.』 하세가와는 책상위의 펜대를 들어 책상위를 두드리며앉아 있었다.결국 안에는 끈이 닿아 있던 놈이 없다는 건가.그럴 리가 없다.누가 알아도 안다.더군다나 징용으로 온 놈들과 달리 제발로 걸어들어온 놈들은 어딘가 연고가 있게 마련이다 .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사무실안을 거닐었다.두 놈의연고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걸음을 멈추면서 하세가와는 벽을 바라보았다.그 다리병신이 됐다는 놈,마지막으로 미뤄 놓은 그놈을 불러와 버릴까.
아니다.하세가와는 머리를 저었다.남자와 여자란 건 다르지.결국 그년이 알고 있어도 가장 잘 알고 있을텐데,그걸 입열게 하는 게 제일 빠르고 정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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