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개발한 겁 없는 쥐가 큰 쥐를 물어 뜯고 있다. [중앙포토]
생명공학 시대에 쥐는 ‘황금 쥐’로 통할 만큼 각별한 존재다. 과학의 눈으로 살펴본 쥐는 인간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 생명 현상의 이해 등에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다. 전 세계에서 한 해 3000만 마리, 한국에서 연간 300만 마리의 쥐가 실험용으로 사용될 정도다.
쥐는 진화 계통상 인간과 동일한 포유류다. 과학자들은 인간과 쥐가 약 7500만~1억2500만 년 전 살았던 ‘이오마이아 스캔소리아(Eomaia scansoria)’ 라는 동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과 쥐는 진화 계통에서 보면 먼 친척뻘인 셈이다.
◆유전자 40% 인간과 동일=쥐의 유전자 서열은 2002년 말 밝혀졌다. 약 27억 쌍의 염기(인간은 30억 쌍)와 40개의 염색체(인간은 46개)를 가지고 있다. 그중 인간의 유전자와 40% 정도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쥐가 인간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를 이처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쥐를 인간 대용으로 실험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실험용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쥐는 인간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쥐는 포유류인 데다 수명이 2~3년으로 짧아 유전적 특징을 실험하기에는 그만큼 좋은 동물이 없다. 유전자 시대에 쥐를 통해 밝혀진 질병 유전자와 유전자의 역할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컬러도 구분하는 쥐 탄생=쥐는 색맹이다. 쥐는 파랑·노랑·회색 계열의 색밖에 보지 못한다. 미국 UC샌타바버라대 제럴드 제이콥스 박사팀은 사람의 X염색체를 쥐에 이식해 컬러를 볼 수 있게 했다고 지난해 5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었다. 쥐가 후천적으로 컬러에 필요한 유전자를 얻어 신이 만든 색을 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인간처럼 컬러를 볼 수 있는 빨강·파랑·초록 삼원색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지 않으면 컬러를 볼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 실험으로 유전자 하나가 인류에게 세상을 컬러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유전자 삽입과 삭제 자유자재=쥐가 유전자 시대에 ‘황금 쥐’로 불리게 된 데는 눈부신 유전자 조작 기술이 있었다. 원하는 유전자를 집어 넣거나 빼내는 기술은 쥐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이 기술을 1989년 처음 개발한 미국 유타대의 마리오 카페치 교수 등 세 명이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 특정 유전자를 빼낸 쥐 수천 종이 만들어졌다. 고양이에게 대드는 겁 없는 쥐, 털이 없는 쥐, 파킨슨 병에 걸린 쥐, 일반 쥐에 비해 네 배 정도 큰 쥐, 유전자 수백만 개가 없어진 쥐 등 유전자 변형 쥐가 속속 등장했다.
털이 허옇게 세는 쥐.
유전적으로 보면 이들 쥐는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새로운 종이다. 유전자가 변형 된 쥐는 잡종이 섞이지 않는 한 대대로 그 종을 보존하며 새로운 종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