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 인간은 쥐를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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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카이스트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개발한 겁 없는 쥐가 큰 쥐를 물어 뜯고 있다. [중앙포토]

2008년 무자년(戊子年) 쥐띠 해의 새해가 밝았다. 쥐는 12간지에서 첫째로 등장하는 동물로 다산(多産)과 다복(多福)의 상징이다.

생명공학 시대에 쥐는 ‘황금 쥐’로 통할 만큼 각별한 존재다. 과학의 눈으로 살펴본 쥐는 인간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 생명 현상의 이해 등에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다. 전 세계에서 한 해 3000만 마리, 한국에서 연간 300만 마리의 쥐가 실험용으로 사용될 정도다.

쥐는 진화 계통상 인간과 동일한 포유류다. 과학자들은 인간과 쥐가 약 7500만~1억2500만 년 전 살았던 ‘이오마이아 스캔소리아(Eomaia scansoria)’ 라는 동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과 쥐는 진화 계통에서 보면 먼 친척뻘인 셈이다.

◆유전자 40% 인간과 동일=쥐의 유전자 서열은 2002년 말 밝혀졌다. 약 27억 쌍의 염기(인간은 30억 쌍)와 40개의 염색체(인간은 46개)를 가지고 있다. 그중 인간의 유전자와 40% 정도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쥐가 인간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를 이처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쥐를 인간 대용으로 실험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실험용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쥐는 인간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쥐는 포유류인 데다 수명이 2~3년으로 짧아 유전적 특징을 실험하기에는 그만큼 좋은 동물이 없다. 유전자 시대에 쥐를 통해 밝혀진 질병 유전자와 유전자의 역할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컬러도 구분하는 쥐 탄생=쥐는 색맹이다. 쥐는 파랑·노랑·회색 계열의 색밖에 보지 못한다. 미국 UC샌타바버라대 제럴드 제이콥스 박사팀은 사람의 X염색체를 쥐에 이식해 컬러를 볼 수 있게 했다고 지난해 5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었다. 쥐가 후천적으로 컬러에 필요한 유전자를 얻어 신이 만든 색을 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인간처럼 컬러를 볼 수 있는 빨강·파랑·초록 삼원색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지 않으면 컬러를 볼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 실험으로 유전자 하나가 인류에게 세상을 컬러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유전자 삽입과 삭제 자유자재=쥐가 유전자 시대에 ‘황금 쥐’로 불리게 된 데는 눈부신 유전자 조작 기술이 있었다. 원하는 유전자를 집어 넣거나 빼내는 기술은 쥐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이 기술을 1989년 처음 개발한 미국 유타대의 마리오 카페치 교수 등 세 명이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 특정 유전자를 빼낸 쥐 수천 종이 만들어졌다. 고양이에게 대드는 겁 없는 쥐, 털이 없는 쥐, 파킨슨 병에 걸린 쥐, 일반 쥐에 비해 네 배 정도 큰 쥐, 유전자 수백만 개가 없어진 쥐 등 유전자 변형 쥐가 속속 등장했다.

털이 허옇게 세는 쥐.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에디 루빈 박사는 쥐의 유전자 중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은 염기 230만 쌍을 빼내 버렸다. 그래도 생식 능력에 이상이 없었으며, 질병에도 걸리지 않았다. 빼낸 염기들은 사람의 유전자에도 70% 정도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런 유전자를 ‘정크(쓰레기) DNA’라고 부른다.

유전적으로 보면 이들 쥐는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새로운 종이다. 유전자가 변형 된 쥐는 잡종이 섞이지 않는 한 대대로 그 종을 보존하며 새로운 종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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