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학수사 CSI 뺨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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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A씨(43)는 지난해 아내 B씨(40)를 간통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아내와 내연남 C씨(42)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 사진은 A씨의 아내가 내연 관계를 끝내려 하자 내연남이 홧김에 남편에게 e-메일로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내연남은 경찰 수사에서 “사진을 찍은 시점이 간통죄 공소시효(3년)가 지난 2003년”이라고 주장했다. 경찰도 이들의 주장을 뒤집지 못했다. “시효가 지나 공소권이 없다”는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그러나 의정부지검은 e-메일로 전송된 사진 파일을 분석했다. 그 결과 문제의 사진은 2004년과 2006년에 촬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시효가 남아 있어 간통죄를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이 증거를 들이밀자 B씨와 C씨는 내연 관계를 자백했다. 검찰의 과학수사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미국 CSI(과학수사대)와 버금가는 기법으로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3일 공개했다.

 ◆동영상 복구해 성폭행 입증=D양(18)을 성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이모(40)씨는 “인터넷사이트에서 만나 합의하에 원조 교제를 했다”고 잡아뗐다. D양은 “강제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다. “이씨가 휴대전화로 성폭행 장면을 촬영한 것 같다”는 피해자 진술이 있었지만 동영상은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부산지검은 이씨의 휴대전화를 대검 과학수사담당관실에 넘겼다. 삭제된 동영상을 복구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대검은 삭제됐던 성폭행 장면 동영상을 복원해 부산지검에 전송했고, 이씨는 구속 기소됐다.

 2002년 다른 사람을 속여 880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수배 중이던 김모(35)씨는 지난해 1월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자신과 이름까지 같은 일란성 쌍둥이가 있는데 그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증거로 수배자의 주민번호와 다른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제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가 주민등록증을 신청할 때 찍은 지문과 수배자의 지문이 똑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김씨가 호적을 이중으로 작성했으며 새로운 주민증을 받아 쌍둥이 행세를 하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DNA로 미제사건도 해결=증거물에서 DNA를 찾아내는 과학수사 기법도 범죄를 입증하는 데 빛을 발했다. 지난해 초 수퍼마켓에서 상습적으로 담배 등을 훔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47)씨는 2005년 충주에서 발생한 수퍼마켓 절도 용의자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당시 용의자가 현장에 버리고 간 양말에서 채취한 DNA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 중이었다. DNA 대조로 미제사건을 해결한 것이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자 혈액을 바꿔치기하려 했던 간호사 최모(35·여)씨도 DNA 검사로 덜미가 잡혔다. 최씨는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자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혈액을 채취하고 동료 간호사에게 다른 혈액과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 음주 수치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최씨가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점을 주목, 적발 당시 채취한 혈액과 그의 DNA를 대조했다. 검사 결과 혈액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최씨와 혈액을 바꿔치기한 동료 간호사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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