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전통 춘천고 야구부 “선수가 모자라 … ” 해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강원도 야구의 명맥을 지켰왔던 51년 전통의 춘천고 야구부가 해체됐다. 춘천고(유창옥 교장)는 2일 오후 교장실에서 감독과 코치·학부모가 참석한 자리에서 “야구부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 야구부를 해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창옥 교장은 “올해 야구부의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등 선수 수급에 문제가 있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데다 학부모 전원이 전학을 요구해 해체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육자적 입장에서 야구부를 해체하는 길만이 대학 진학 등 선수들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야구부에서 졸업 예정인 3학년 학생을 제외한 1, 2학년 선수 9명은 서울·경기 등 타 시·도의 야구부로 전학을 갈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학부모는 “선수의 수급 문제와 재정적 지원 방안을 해결하지 못해 팀이 없어지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1956년 창단된 야구부는 지난해 6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이 교체됐으며, 운영비를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바람에 선수들이 진학을 기피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야구부 운영비는 학교에서 연간 1500만원을 지원하고, 감독 인건비는 강원도교육청에서 부담하지만 합숙훈련·전지훈련비는 동문회 지원과 학부모 회비로 충당했다. 이 때문에 춘천지역 유일한 중학 야구팀인 춘천중 출신 5명이 춘천고 대신 다른 학교로 진학해 올해 선수를 확보하지 못했다.

 야구부는 창단 후 중앙대회에서 변변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60년대 말까지 강원도에서 유일한 팀으로 야구 불모지를 지켰다. 70년대 후반부터 강릉고·원주고·속초상고가 잇따라 야구팀을 창단하면서 중앙대회 본선 진출을 걱정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대붕기를 비롯한 지방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 ‘강원도의 야구 명문’으로 꼽혔다. 중앙 무대에서는 ‘만만한 상대’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99년에는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창단 이래 최고의 성적이었다.

 야구부 출신으로 유명 선수는 거의 없다. 현재 프로야구 SK 김동건(내야수), 상무 이재환(투수·현대)씨 정도다. 가수 김C도 야구부 출신이다. 춘천시야구협회 유준우 회장은 “팀 해체를 막으려고 선수 수급 방안은 물론 다양한 지원책을 제시했지만 학교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춘천=이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