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시대명음반>테아킹 모차르트 클라리넷협주곡A장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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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쏴아… 12월의 폭우였다.늘 그렇듯 가난한 이의 죽음은 쓸쓸하고 적막하게 마련.시신을 실은 마차가 비석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빈 시립묘지에 도착했다.화면 위로「레퀴엠」의 첫 소절이 무심코 흐른다.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 마지막 장면이다.
만년의 모차르트-만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았던 덧없는 35년의 세월이었지만.그에게 어울리는 음악은 물론「레퀴엠」이었다.검은 옷을 입고 불쑥 나타난 귀족의 불길한 청탁을 받고 모차르트는 임박한 죽음을 예견하듯 진혼곡을 준비한다.그시 간 이 무채색의 우울한 작품과는 전혀 다른 밝은 협주곡이 다른 한쪽에서 잉태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모차르트의 마지막 협주곡이자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전기작가 알로이스 그라이터의 말을 빌리면 A장조라는 조성은 모차르트에게 거의 극단적인 기쁨을 표현하는 무기였다.그러나 그것은 외향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를 응시하는 세속을 초월한 기쁨이다. 이 빛나는 협주곡이 그가 숨을 거두기 불과 두달전쯤에 완성되었다.번잡한 프라하를 떠나 빈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모차르트의 병세는 악화되었다.
그의 건강을 돌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효과가 의심스런 비방(秘方)만으로 몸을 가누면서 클라리넷 협주곡의 오선지를 차례대로 메워갔다.신열(身熱)의 아픔과 창작의 희열을 함께 느끼며.
오늘 골라든 음반에는 원전악기를 통해 표현의 폭을 넓힌 독주자 덕분에 초월자 모차르트의 기쁨이 스며있다.3악장 론도에서 미묘하게 바뀌는 비감한 조성의 표정연출은 매우 독특하다.
칼 라이스터.알프렛 프린츠.잭 브라이머.앤서니 페이.리처드 스톨츠만….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음악을 말할 때 상식적으로 따라붙는 명인들이다.그러나 모차르트 당시 관습대로 바셋 클라리넷을쓴 테아 킹의 85년 연주는 누구보다 투명하고 정직한 분량의 기쁨을 재어낸다.올해 70세를 맞는 이 영국 클라리넷 주자는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엠마 존슨.재닛 힐튼의 어머니뻘에 해당되는 일급 주자.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두자.
〈Hype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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